[전우용의 공간 너머] 세종대왕과 충무공
입력 2010-12-02 18:04
영웅이라는 뜻의 영어 히어로(Hero)는 ‘반신(半神)’ 또는 ‘신인(神人)’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다르다’는 뜻의 헤테로(Hetero)와 연관된다. 오늘날 헤테로는 ‘이형(異型) 접합자’ 또는 ‘이형 배우자’라는 뜻의 과학 용어로 사용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영웅이란 ‘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제3의 존재’로서 신의 능력을 지녔으되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리스 신화는 영웅의 활약이 중심 테마를 이루는데, 이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대상 역시 사람과 사자가 섞인 스핑크스, 사람과 독수리가 섞인 그리핀, 사람과 말이 섞인 켄타우로스, 사람과 소가 섞인 미노타우로스, 사람과 뱀이 섞인 메두사 등 ‘다른 존재’의 속성을 아우른다. 신성(神性)과 결합한 인간은 ‘초인’이자 ‘영웅’이며 동물성과 결합한 인간은 ‘괴물’이 되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기본 서사 구조다.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도 비슷하다. 신의 아들이자 그 자신 신인 환웅이 땅에 내려와 곰을 인간으로 변신시키고, 그를 아내로 맞아 낳은 ‘존재’가 단군이다. 오늘날의 유전학으로 보자면, 단군의 유전자에 ‘인간성’은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중간적 존재가 있다고 믿었고, 신과 인간의 속성을 아울러 지닌 ‘중간자’를 영웅으로 추앙했다. 기원 후 1세기쯤에 저술된 플루타르크의 ‘영웅전’은 사람들을 영웅으로 묘사했으나, 이 인문주의는 금세 소멸했다. 중세의 유럽인에게 그리스도는 영웅으로 태어났으되 부활을 통해 영웅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였고, 교황과 성인들은 그 아래에 자리 잡은 ‘준 영웅적’ 존재였다.
동양에서는 황제가 곧 ‘인신(人神)’이었다. 그는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천자(天子)로 불렸으며, 그에게 큰 공을 세운 사람들만이 ‘공신(功臣)’으로서 죽은 뒤 황제의 사당 옆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공자, 맹자, 증자, 주자 등 유교의 성인(聖人)으로 추앙받은 사람들도 어쨌거나 ‘사람(人)’일 뿐이었다.
시민혁명은 신이 왕을 통해 사람을 다스린다는 중세적 관념을 무너뜨렸다. 날 때부터 신과 맺어진 황제나 왕이 아니더라도,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영웅의 시대’는 가고 ‘위인(The Great Man)’의 시대가 열렸으며 곧 영웅과 위인이 동의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영웅과 위인들’에 관한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라가 곧 망할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애국 지식인들은 외침(外侵)을 막아내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영웅과 위인의 출현을 고대했고, 옛 위인들에 관한 얘기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의 용기와 의지를 북돋우려 했다. 그래서 이순신,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등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 특히 주목됐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 위인들에 관한 얘기는 공식 역사서에서 사라졌고 한국 위인들에 관한 책은 모두 금서(禁書)가 됐다. 다른 민족들이 자국민 영웅과 위인을 찾고 만들어 ‘국민 교육’의 구심으로 삼는 동안, 한국인들은 자국인 영웅과 위인을 알지도 찾지도 못한 채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해방이 되어 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새 구심점을 선정할 때, 위인 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사이고 다카모리, 이토 히로부미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이유는 없었다.
몇몇 ‘권위자’에 의해 40년 전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다섯 명의 위인이 급조됐다.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을지문덕, 원효대사, 충정공 민영환. 이들은 먼저 길 위에 이름을 새겼고, 이후에 쏟아져 나온 ‘한국 위인전’의 기득권자가 됐다. 뒤이어 화폐 초상과 동상, 기념관이 이들의 지위를 등락시켰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불에 탄 남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낙산사 화재에는 심드렁하다.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알지만 2호부터는 모른다. ‘1등만 기억하는’ 풍조는 위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세종대왕 동상을 새로 만들고, 충무공 동상을 긴급 보수하면서도 다른 동상들에는 무관심하다. 지금은 해방된 지 60년이 훨씬 넘었고, ‘국론통일’을 앞세워 획일화를 강요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다원화 시대에 걸맞게 위인의 자격 범위도 넓히고, 각자에게 합당한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자녀들에게 100년 전, 50년 전에 먹던 음식과 입던 옷을 먹이고 입히려는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자라나는 세대와 미래 사이의 가교 노릇을 하는 ‘위인들’은 여전히 100년 전, 50년 전의 그 사람들뿐이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
‘전우용의 공간 너머’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