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성기철] 햇볕정책, 당분간 장롱 속에 넣어두라

입력 2010-12-02 17:47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북한군이 도발을 해 왔다. 6·25전쟁 이후 남북한 정규군의 첫 교전, 이른바 1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것이다. 북이 선제공격을 했음에도 우리군은 9명이 경상을 입은 데 반해 북측에선 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피격 보고를 받은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소집했고, 관계 장관 등은 남북회담사무국에 모여 대책을 숙의했다. 회의 결과 발표는 언론인 출신 청와대 대변인 대신 군 장성 출신인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 맡았다. “북한 측의 NLL 침범과 무력도발은 중대한 문제로서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북측이 이러한 행위를 또다시 자행할 경우 우리 군은 이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다.” 그의 표정은 자신감에 넘쳤고, 말투는 단호했다.

지금은 北과 대화할 때 아니다

당시 김 대통령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 반대자들까지 박수를 보낸 것으로 기억된다. 대북 햇볕정책을 추구하던 김 대통령이 안보에 허점을 보일 것으로 걱정했으나 그런 불안감을 씻어줬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의를 보인 황 수석의 발표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지난달 23일 연평도가 공격받았을 때 청와대 발표자들이 우왕좌왕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1차 연평해전 때 청와대가 비교적 대처를 잘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덕분에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본다. 2002년 2차 연평해전을 겪으면서도 햇볕정책은 건재했고, 노무현 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계승했다.

햇볕정책은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을 표방한 현 정부는 북한 길들이기에 초점을 맞췄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북한에 대해 지원을 확 줄였고, 햇볕은 더 이상 비춰지지 않았다. 남북관계는 갈수록 경색됐고, 결국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엉뚱한 짓을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여야가 햇볕정책의 공과(功過)에 대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북한 감싸기와 지원이 핵 개발과 포탄으로 되돌아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민주당은 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배척한 탓에 전쟁을 초래했다고 맞받아친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민 총화로 추가도발 막아야

분명한 것은 현시점에서 북쪽을 향해 햇볕을 쪼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영토가 무참히 유린당한 상황에서 금방 북을 형제처럼 껴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 햇볕정책의 유용성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내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햇볕정책이 결코 안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만한 국민들은 다 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햇볕정책을 부활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불벼락 운운하며 연일 추가도발을 공언하고 있는 북한에 대고 대화 좀 하자고 애걸복걸이라도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거기다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민주당이 참 무책임해 보인다. 북한마저 6자회담 무용론을 주장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더러 이를 수용하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지금은 한·미 군사동맹을 보다 굳건히 하고, 민·관·군이 한 덩어리가 돼 북의 추가도발을 막는데 전력을 기울일 때다. 추가도발을 해 올 경우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민주당으로서는 아쉽겠지만 햇볕정책을 당분간 장롱 속에 넣어두는 것이 좋겠다. 이번 사태가 말끔히 수습된 뒤에 꺼내도 늦지 않다. 국가 안보 위기 상황에선 야당도 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 총화가 필요한 때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