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열 채에 조선을 담다… G20 배우자 오찬장으로 주목받은 한국가구박물관, And에 첫 공개

입력 2010-12-02 18:43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지난 11∼12일. 각국 정상들이 삼성동 코엑스에서 회담을 가지는 동안 배우자들은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시간을 보냈다. 배우자 일행은 11일 오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본 후, 인근 한남동 리움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했다. 다음날인 12일 오전에는 종로에 있는 창덕궁에 들렀고,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서울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조건 속에서 영부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으로 네 군데가 선택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창덕궁은 국가 소유이고, 리움미술관은 삼성그룹이 만든 것으로 셋 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한국가구박물관은 존재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는 비밀의 공간이다. 그동안 일반은 물론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뭐가 있을까. 한 여성이 혼자 힘으로 꾸몄다는 박물관이 어떻게 한국미를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28일 한국가구박물관의 문을 두드렸다.

신부가 화장을 하듯이

사람 키의 배는 됨직한 육중한 나무 대문이 열리자 극도로 정제된 공간이 펼쳐진다. 방금 지나온 자동차와 소음, 콘크리트의 세상으로부터 단숨에 격절되는 느낌이다. 문과 담으로 둘러싸인 그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은 집과 마당은 물론 나무, 돌계단, 심지어 풍경까지 어떤 확고한 미적 논리 아래 다스려지고 있는 듯했다.

전날 내린 눈이 마당을 하얗게 덮었다. 눈 위로는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 사무를 총괄하는 박중선 이사는 “마당에 눈이 쌓이면 눈 위로는 아무도 걸어 다니지 않는다”며 “한옥과 어우러지는 설경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관장님께서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물관 관람은 한옥에서 시작된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바로 궁채가 보인다. 1970년대 창경궁 일부가 헐릴 때 가져온 기둥과 기와를 살려서 재건축한 건물이다. 궁채를 지나면 곳간채, 부엌채, 사대부집 등이 이어진다.

한 채 한 채가 다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어느 것 하나 허술한 게 없다. 곳간채는 명성황후 오라버니가 살던 마포 집의 곳간이 헐리기 전 가져온 것이고, 사대부집은 순정효황후가 실제 살던 집을 나중에 사들여 옮겨온 것이다. 부엌채는 지붕 중앙에 환기구가 솟아있는 게 특징인데,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의 요사채를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미숙(63) 관장은 1995년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박물관 터를 정한 후, 민가의 이름 난 한옥들을 옮겨짓기 시작했다. 한옥의 건축형식은 레고와 비슷하다고 한다. 하나하나 뜯어서 새로 조립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2500여평 부지 위에 한옥 열 채로 된 박물관의 외형이 갖춰졌다.

정 관장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한옥들을 모아서 하나의 완결적이고 자족적인 공간으로 창조해냈다. 그의 안목과 솜씨에 의해 수리되고 변형되고 재배치된 한옥들은 한국건축 본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성되었다. 그래서 가구박물관 한옥들에서는 화사함과 따뜻함이 배어나오고, 현대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시집가는 신부가 화장을 하듯이 그렇게 곱게. 그게 전통을 리터치하는 정 관장의 방식이다. 박 이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신부가 곱게 화장을 하듯이 그렇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연출해서 세계에 선보여야 한다는 게 관장님의 생각”이라며 “한국미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뽑아내서 세계와 현대의 안목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재해석을 넣어서 내놓아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우리 가구

한옥 구경이 끝나면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정 관장이 평생 수집해온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목가구 2000여점 중 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 목가구들이 놓일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정 관장은 공들여 한옥을 지은 것이다. 한옥에 넣어야 우리 가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유물만 보는 박물관이 아니라 유물이 사용된 공간과 문화까지 같이 체험하는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한옥 내부는 조선시대 주거공간이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었고, 그 공간 속에서 가구들이 어떻게 놓이고 쓰였는가 보여준다. “조선 가구들은 사람이 앉는 자리와 팔의 위치, 눈높이, 바깥 풍경까지 고려해 제작됐다”는 게 박 이사 설명이다. 자리에 앉아보니 방 안의 가구들은 물론이고 마당과 담 너머 풍경까지 전부 눈높이 아래로 내려온다. 시야가 편안하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재료별, 용도별, 출처별로 분류된 가구들을 만난다. 지하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사로잡힌다. 먹감나무로 만든 남성용 서재 가구들인데, 시간과 함께 한층 우아해진 나무의 색깔과 무늬가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동선은 지하 1, 2층을 오르내리며 꽤나 복잡하게 이어진다. 가구들은 직선으로 펼쳐져 있지 않고, 모퉁이마다 층마다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난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휘)가시나무에 대나무나 종이로 만든 가구도 볼 수 있다. 함, 농, 반닫이, 서안, 평상, 책함, 약장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같은 가구라도 지방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한 쪽에는 부엌가구들만 모아져 있다. 뒤주, 찬장, 소반, 찬탁, 촛대, 등잔 등이다.

학예사 신지연씨는 “반닫이나 소반을 보면, 지역별로 모양이 다 다르다”면서 “당시 일본에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조선 가구들이 보여주는 다양성은 우리 문화의 폭과 깊이가 남달랐음을 알게 한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조선 가구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은 비례와 균형, 그리고 절제”라고 말했다.

“우리 가구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요. 화려한 기술력이 있지만 과시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아 절제돼 있어요. 중국 가구는 너무 화려해서 공간이나 인간을 압도하는데, 조선 가구는 친구처럼 편안하죠.”

15년 만에 완성된 박물관

정 관장은 8선 의원이자 외무장관을 지낸 정일형 박사와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세계를 돌며 고가구와 고건축을 공부한 정 관장은 우리 가구야말로 세계적이라는 확신에 도달하고 가구박물관 건립에 착수했다. 박 이사는 “관장님은 우리 안에 우리도 깜짝 놀랄만한 게 있다, 우리 의식주 안에 세계가 감탄할 만한 게 있다고 하신다”며 “특히 민화와 보자기, 조선 가구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극찬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전했다.

정 관장은 박물관으로서 완성도가 갖춰지기 전에는 절대 문을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 세계 유명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특히 일본의 교토 지역과 프랑스 고성들을 자주 방문하며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고민했다.

그의 마음에 들게 박물관의 꼴이 갖춰진 게 작년이다. 정 관장은 지난해 봄 비공식으로 박물관을 오픈했다. 그동안 다녀간 이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성북동에 산재한 30여개 주한 대사관에서 외국 손님들을 데리고 자주 왔다. 지난 9월에는 서울시 주최 서울국제경제자문단회의(SIBAC) 만찬과 디자인올림피아드 환영 만찬도 치러냈다.

외국인들 사이에 가구박물관이 좋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유명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구겐하임미술관 관장, 뉴욕현대미술관(MoMA) 수석 디렉터가 찾아왔다. 영국 3대 박물관에 드는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부관장은 “박물관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방문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가구박물관은 내년 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만 15년이 걸린 준비가 드디어 끝난 것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