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입력 2010-12-02 18:07


연례행사처럼 책꽂이를 정리하다 보면 망설이다가도 결국 남겨두는 책들이 있다. 책꽂이에서의 생명력은 책에 대한 또 하나의 가치 척도가 된다. 직업상 다양한 잡지를 모아두는데, 책장 한 줄을 차지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늘 고민하다가도 그대로 두는 잡지의 정석이다. 지리학회의 로고를 딴 노란색 표지의 판형, 지루하다 싶을 만큼 변동이 적은 레이아웃, 잡지 부록으로 딸려오는 정교한 지도 등은 이제 잡지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교훈적인 듯하면서도 보수적인 미국식 민족주의가 드러나는 기사의 성격 또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특징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흑인이 표지를 장식하는 일이 북극곰이 표지에 등장하는 횟수보다 적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사진의 정석을 소개한다.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 그 뒤에 숨겨진 사진가들의 흥미로운 촬영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 한 권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가능케 한다. 고공비행만을 하는 새 금강앵무를 찍기 위해 정글 한가운데 아파트 높이만한 망루를 짓고 그 위에서 날을 지새우는 생태사진가 프란스 란팅의 이야기며, 표지 속 주인공인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20년 만에 찾아 나선 스티브 매커리의 여행담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기사거리를 제공한다.

굳이 텃새 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 잡지는 전 세계 수많은 사진가에게 꿈이었다. 1996년 러시아 캄차카 반도 촬영 중 갈색 곰에게 물려서 세상을 떠난 일본의 대표적 생태사진가 미치오 호시노는 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알래스카 특집기사가 자신을 생태사진가로 키웠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내셔널 지오그래픽조차도 매체의 위기를 얘기하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 세계 5000만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배경에는 포토저널리즘의 힘이 버티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지금처럼 사진의 비중이 커진 것은 최초의 정식 편집자였던 길버트 그로브너 시절이었다. 그는 전화기 발명가이자 지리학회의 두 번째 회장이었던 그레이엄 벨의 사위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888년 국립지리학회지로 출발했을 당시만 해도 고루하고 전형적인 학회지였을 뿐이다. 학술과 탐사라는 명분 아래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영국의 왕립지리학회지보다도 50여년이나 뒤늦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부터 그로브너는 화보 중심의 기사 편집을 감행했고, 이미 1930년대 들어서는 기동성이 좋은 35밀리 카메라를 사용하는 등 사진 편집과 관련한 앞선 시도를 통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오늘날의 명성에 올려놓았다.

그 화려한 역사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