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대에 ‘우리’를 말하는 가수 안치환, 누가 뭐라 하든 … 그래, 나는 386이다

입력 2010-12-02 18:06


가수 안치환(45)은 느리다. 질문을 듣고 입을 열기까지, 입을 열면 한 어구가 끝날 때까지 한 템포씩 쉬어 결국 한 문장이 완성되기까지 산 하나를 오르는 것 같다. 이런 신중한 사람들은 오가는 말들이 너무 뻔해 재미없다. 연예인들 이별 후에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헤어졌다’고 말하는 거, 뭐 그런 거다. 그런데 이 사람, 느려서 그렇지 할 말 다 한다.

-10집 앨범 ‘오늘이 좋다’를 발매했다. 오늘이 발매일인 11월 30일이다(인터뷰는 서울 연희동 자택이자 스튜디오에서 했다).

“(매니저에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오늘인가? (매니저가 그렇다고 응수했다) 아, 오늘이다. 앨범 내면 대중이 무조건 리액션하고 그런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 절망감을 더는 느끼지 말아야 한다. 뮤지션 자신의 만족도만이 중요한 시대가 된 거다. 팔리고 안 팔리고에 초연해질 때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다.”

-음반 시장 죽은 건 옛날 일 아닌가. 요즘 2, 3곡 넣고 디지털 싱글 앨범 내는 시대다.

“지금까지는 그러기 싫었다. 구닥다리라 해도 할 말 없고. 디지털이니 뭐니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직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앨범은 앨범이다. 10집까지는 이런 앨범 내고 앞으로는 그런 부분도 고려해 보겠다. 세상은 디지털화됐지만 앨범 내기까지의 과정은 아날로그 아닌가.”

그는 앨범을 꽉꽉 채워 ‘그래, 나는 386이다’ ‘마흔 즈음’ 등 20곡을 10집에 담았다.

-신곡 ‘이무기’ 노래 재밌더라. ‘이무기가 판을 치네. 사이비가 판을 치네. 얼라 얼라 이 세상이 미쳤나봐’ 가사에서 ‘이무기’는 현 정권을 뜻하나.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사 등에 참석해 꾸준히 노래해 왔다.

“전혀. 홍대에서 노래하는 한 후배가 ‘명박이가’란 말을 계속 한 적 있다. 나는 현 정권을 찬성하지 않지만, 한 개인의 인격은 늘 존중받아야 하고 모독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뮤지션의 품위이고. 대통령도 누군가의 할아버지이고 아버지 아닌가. 그 후배한테 이런 말을 했었는데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8집에선 ‘개새끼들’이란 노래도 발표하지 않았나. 8집은 15곡 중 9곡이 사회 비판적이었다.

“‘개새끼들’은 만들고 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쁜 노래였다. 그건 누군가를 특정하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시대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그런 것에 대해 눈 감고, 자기 밥그릇만 생각하지 않나. 그런 데 대한 성찰의 결과였다.”

안치환은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재학 시절 노래패 ‘울림터’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1986년 노래운동모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을 거쳐 89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네가 만일’(4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5집)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대중가수로 유명해지자 어떤 이들은 ‘변절했다’고 말했다. 이런 걸 의식해 2004년 8집을 세게 만든 거 아닌가. 이를테면 ‘봐라, 내가 과연 변했나’고 남들한테 증명하고 싶은 거.

“그 시기에는 이라크 전쟁 파병부터 환경까지 갖가지 사회 문제들이 제기됐다. 일부러 그런 앨범을 만들었다. 나보고 저항 가수, 대중 가수, 대중과 운동권을 아우르는 가수, 별별 이야기를 다 하지만 정말 불필요한 이야기다. 90년대 초반 이념의 시대가 붕괴하고 3집 앨범부터 대중가요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음악을 했는데 ‘어떻게’ 살아남는가,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남녀관계에 관한 노래가 99%인 가요판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런 노래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 이건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너는 네가 부른 노래 중에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안치환이 될 거냐, ‘네가 만일’의 안치환이 될 거냐고 물어보면 ‘그 다가 나다’고 말하겠다. ‘그렇게 묻는 너는 아메바냐, 말미잘이냐’고 질문하고 싶다. 인간이다. 사람의 내면 정신은 복잡하고 그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고 포용하는 게 필요하다. 너와 나, 적과 나의 이분법은 의미 없다.”

-가사에 벗, 우리들, 선배, 후배처럼 ‘연대’를 내포하는 단어가 많다. 요즘 노래 가사는 다 ‘나’ 일색이다. 일종의 셀프홀릭(self-holic·디지털 세대가 낳은 자기애 강한 소비자)이다. 세대차이인가.

“우리는(그는 역시 ‘우리들’이라는 단어로 말을 시작했다) 공동체 의식에서 시작한 세대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단어가 그런 거다. 그게 동시대인에 대한 연대감, 위로의 마음, 격려의 마음이다.”

-이제껏 노동 문제를 직시한 곡을 많이 불렀다. 이번 앨범에도 ‘내 이름은 비정규직’ 등 3곡을 담았다. 무대에만 서는 가수가 과연 이런 문제를 몸으로 느끼고 노래하는 건가.

“(그는 이 부분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띠었다) 내가 쓴 건 아니지만 7집 ‘13년만의 고백’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노래 부르며 무감해지는 것은 일하며 숨쉬는 사람들의 전부를 가슴으로 받아들여 담아내는 데 게으르기 때문이요.’ 고뇌를 표현하는 가사인데, 소외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예술가의 자세 또한 그래야 하기 때문에 노동에 관한 노래를 만든다.”

-진보 진영 공연에 엉뚱한 가수들이 참여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게 괜찮은 시장이다’는 계산으로 오는 애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순수하지 않다. 그런 애들 이용해 관심 끌려는 운동권 마인드도 불만이고. 말 안 되는 헛소리 하다 들어가지 말고, 이용하려면 차라리 자리에 맞는 노래나 만들어 와라, 그런 이야기다.”

-누구?

“그건…. 나중에 다 걸러지게 돼 있고, 대중들이 알게 돼 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대부라 불리는 ‘조동진 사단’의 일원이다. 다양한 가수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텐데.

“내가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동진이 형은 지금까지 추하지 않게 길을 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추한가? 추한 것 같아. 추하게 생각하는 건 앨범을 내지도 않으면서, 가수로서 기본적인 도리도 하지 않으면서 뻔뻔하게 대중 앞에 나타나는 거. 그러면서 동진이 형 콘서트 쫑파티 때는 꼭 와서 돈도 안 내고 술 먹는다. 그렇다고 동진이 형이 돈을 많이 벌어? 그것도 아냐.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한동준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은 싫다.”

-고(故) 김광석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치환 하면 떠오르는 동시대 사람이다. 합동 공연도 꽤 하지 않았나.

“훌륭한 사람이었다. 불쌍한 사람이었고. (그는 순간 우울한 낯빛을 띠며 말을 길게 멈췄다) 나랑 일을 잘 하고 좋아했던 몇몇 사람들이 다 세상에 없다. 김남주 시인도 그렇고. 동지를 잃은 데 대한 상실감? 어휴, 술 먹을 때만 생각하고 살아야지. 그래야 살 수가 있다.”

-신곡 ‘그래, 나는 386이다’에서 386 세대를 응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386이란 말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작사했다. 자책감과 자긍심이 교차한다.

“누가 뭐라 하든 그 시대에 내 청춘을 쏟아 부었고, 6월 항쟁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정치권에서 386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해도 ‘수많은 386들아, 힘을 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삶 앞에서 누구나 구질구질해질 수 있지만 껴안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과는 같은 대학 친구 사이인데 자주 만나나.

“자주 못 본다. 작년인가 총동문회에서 보고 술 한 잔 먹고. 경필이는 한나라당이고, 이런 질문 안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말을 멈출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갔다) 경필이가 어떤 정치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 없지만 꿈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인간적으로 좋은 친구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은 정치인으로서의 경필이가 아니라, 인간 남경필에 대한 거다. 그런데 별 걸 다 아신다. 경필이 외에도 친한 정치인 꽤 된다.”

-남북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도 많이 불렀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민간인이 희생된 경우는 누가 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규탄해야 될 부분이다.”

그는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더 했으나 기사화는 원하지 않았다. 통일과 평화, 반전(反戰)을 노래해 온 안치환은 미간을 찡그리며 곤혹스러워했다. 이 땅의 수많은 386들이 그러하듯이.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