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망명 中민주화 운동가 웨이징성, “중국 민주화돼야 북한이 바뀐다”

입력 2010-12-02 18:05


오는 10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사진 한 장을 놓고 치러질 모양이다. 수상자인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55)가 감옥에 있는 데다 중국 당국이 가족의 대리출석마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영정처럼 수상자 얼굴이 걸릴 빈 무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된 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민주화 운동가이자 대표적 반체제 활동가인 웨이징성(魏京生·60·사진)에게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중국 내 인권 상황과 류샤오보 노벨평화상 수상의 의미, 중국 민주화가 주변국에 갖는 함의에 대해 물었다. 연평도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진 뒤 답장이 왔다. 중국을 민주화하는 게 한국인에게 왜 중요한지를 담은 답변은 시종 선명하고 비타협적이었다. 이번 포격전이 남북 긴장을 높여 북한에 군대를 주둔시키려는 중국 측 의도로 벌어졌다는 도발적 주장도 했다.

웨이징성은 베이징 외곽 친청감옥 내 인권 상황을 폭로한 ‘20세기 바스티유 감옥’의 저자로 유명하다. 10여년 수감 끝에 1997년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는 워싱턴에 ‘웨이징성 파운데이션’을 세워 해외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왔다. 96년 사하로프상과 로버트케네디인권상을 받았다.

중국 인권의 현재 시각은?

웨이징성은 중국 내 인권 상황을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혹평했다.

“30년 전 내가 감옥에 갈 때만 해도 인권 변호사 가오즈성(지난해 2월 공안에 연행된 뒤 올 초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행방불명 상태다)이 받은 것 같은 가혹한 고문은 없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내게 최악의 대우를 해주라고 명령했는데도 그랬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에 표현의 자유가 커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통제는 더 심해지고 있다.”

79년 그가 쓴 ‘20세기 바스티유 감옥’을 보면 강한 빛과 약물, 고무슈트를 활용한 고문기법이 나온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수감자에 대한 가혹행위는 그때보다 심해졌다는 주장이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착시현상은 미디어 때문에 생겼다고 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뿌리는 돈에 국제 미디어가 입을 봉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11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류샤오보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는 뜻밖에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비록 인용이었지만 “류샤오보는 중국공산당의 최대 협력자”라는 말까지 했다.

“류샤오보는 온건파다. 이는 중국공산당과 원칙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온건파는) 공산당과 협력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공산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물리력(forces)을 사용하는 사람들에도 반대한다. 그들은 외국인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반체제인사’로 불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온건파에게 상을 주는 것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국내외 압력을 일시적으로 줄여, 결국 평화적 개선의 기회만 사라지게 할 뿐이다.”

언뜻 강경·온건파 간 노선투쟁처럼 들리는 이 발언의 속내는 복잡했다. 웨이징성이 보기에, 이번 노벨평화상은 중국 정부와 서방이 도달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차이나 파워’는 이미 통제 불능으로 커졌다. 미국 유럽 정부조차 중국을 화나게 해서 얻을 실익이 없었다. 그렇다고 민주화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중국 정부를 압박하는, 협상의 지렛대로서 의미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나온 게 바로 “중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온건한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였다. 웨이징성이 비판한 건 류샤오보의 온건노선이라기보다 국제정치의 이런 계산이었다.

웨이징성은 중국 민주화 운동이 처한 현실이 국제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한국과 대조적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덩샤오핑 시대부터 서방 거대기업과 손잡고 중국 인민을 착취하는 법을 배웠다. 중국 인민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는 (민주화 과정에서) 남한에 일어난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국공산당과 개혁파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인민의 희망과 욕구를 더 이상 거부할 수없다.” “정치개혁이란 보호장치 없이는 경제개혁의 과실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지난 가을 원자바오 총리는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발언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해석은 분분했다. 공산당 내부 변화를 내다본 희망적 예측도, 불만을 무마하려는 계산된 발언이라는 폄훼도 있었다. 웨이징성은 단호했다. 개혁파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자발적 변화 가능성은 부정했다.

“당내 세력 중 일부는 현 체제에서 이미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들은 공산당 일당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 폭력적 혁명이 일어나면 모든 걸 한꺼번에 잃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대신 평화롭고, 점진적인 변화를 희망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런 세력을 대변한다. 하지만 이들은 주류가 아니다. 작은 정치 분파일 뿐이다. 다수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웨이징성의 목표는 타협 없는 민주주의였다. 일당제 아래서 인민의 정치참여라는 ‘중국식 사회주의민주’에 대해서는 ‘거짓 민주주의’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은 다당제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다. 세부적인 시스템은 다를 수 있지만 민주주의 원칙은 결코 달라질 수 없다. 중국인들은 이런 목표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문제는 시간과 기회이다. 중국 인민은 결국 자유를 얻어낼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선의에 기대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내외 압력 없이 선한 의도만으로 독재자가 권력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남한의 ‘햇볕정책’이 좋은 증거이다. 북한의 김정일이 햇볕정책으로 한 치라도 변화했는가.”



‘불량이웃’ 북한과 중국 민주화

포는 북한이 쏘았는데 요즘 남한에서는 온통 중국 얘기다. 북한을 혼내줘야 한다는 이도, 달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중국을 쳐다본다. 웨이징성은 남한이 중국 민주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중국 민주화가 동북아에서 게임의 질서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거는 이렇다. 여기 세 명의 플레이어가 있다. 한 사람(남한)은 룰을 지키는데 나머지 둘(중국 북한)은 아니다. 이래서는 게임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리 없다. 만약 두 사람(남한 중국)이 룰을 따른다면? 나머지 한 명(북한)을 바꾸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게임을 할 때 선수들은 참가자 모두가 룰을 지킬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베이징과 평양의 정책은 규칙을 깨는 것이다. 침략하고 살상하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물고기를 낚으러 나무를 탄다’ ‘호랑이 가죽을 얻기 위해 호랑이와 협상한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북한과 같은) 독재자들과 규칙에 대해 말하는 건 속담이 말하는 상황이다.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평화로운 경쟁은 모름지기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정부와 상대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을 민주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국이 민주화되면 게임의 질서가 무시되는 동북아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중국 측 의도를 의심했다. 중국공산당은 북한 3대 세습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쿠데타와 이로 인한 혼란을 우려한다.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은 채 김정일 체제가 붕괴한다면 미국 및 남한의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중국은 김정일 체제 붕괴가 가져올 북한의 혼란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세습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북한에 군대를 주둔시키길 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절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다시 한번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된 것이다. 긴장이 클수록 명분은 그럴듯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연평도 사태의 원인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