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을 위해 고군분투… 출판 에이전트를 아십니까?
입력 2010-12-02 17:24
소설 파는 남자/이구용/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올해도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수상자 발표 전 지난해 수상자를 알아 맞춘 스웨덴 공영방송이 한국의 고은 시인을 유력하다고 보도하면서 기대감을 키웠지만 수상의 영광은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게 돌아갔다.
노벨문학상이 그 나라 문학 수준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고은의 노벨문학상 수상 실패는 한국 문학이 여전히 세계의 변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올해까지 110년 동안 103차례에 걸쳐 107명의 작가가 받았다. 이웃 일본이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와 오에 겐자부로(1994) 등 2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는 사이 우리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이제 이는 우리나라 문학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문학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자성을 갖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 같은 의미에서 한국 문학을 세계 출판 시장에 진출시키는 데 노력해온 이구용(45) ㈜임프리마코리아 상무는 한국 문학계에게는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다. 그런 그가 최근 ‘소설 파는 남자’를 펴냈다. 뉴욕과 도쿄, 베이징 등을 누비며 우리 문학을 알리려고 고군분투하는 출판 에이전트의 희망과 고민을 녹여낸 책이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에서는 ‘에이전트의 기쁨’을 다룬다. 해외 출판 시장으로 성공적으로 진출했거나 진출을 눈앞에 둔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출판 과정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김영하 조경란 신경숙 한강 편혜영 이정명 이은과 북한작가인 홍석중까지 8명의 해외 진출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우리 책을 해외에 소개하기로 결심한 저자가 처음으로 도전한 작가는 김영하였다. 2005년 5월 뉴욕 출장 중 벌어진 에피소드를 보면 긴박하지만 흥미진진한 에이전트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뉴욕 맨해튼 시내 서북쪽에 위치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미국 에이전트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대형 식당은 아니었지만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에서 김영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소개하자 그녀는 큰 호기심을 보였다. 다짜고짜 김영하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6시쯤이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웬일인가. 김영하가 바로 전화를 받는다.”(21∼22쪽)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 소설은 미국에서 1만부 가량이 팔렸다. 김영하의 또 다른 작품 ‘빛의 제국’은 지난 9월 미국의 휴튼 미플린 하코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는 더욱 극적이다. 소설의 영문 번역 샘플을 읽은 미국의 에이전트는 “감동적이다. 눈물이 난다”는 소감을 보내왔다. 미국의 대형 출판사인 크노프사는 2011년 4월 ‘엄마를 부탁해’를 10만부 찍겠다고 선언했다. 외국 작품에게 관대하지 않은 미국 독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 출판 시장에서 해외 출판 저작물 수입은 전체 출판물의 3% 안팎에 불과하다. 해외 문학작품 수입 비중은 전체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한국 문학이 그 1%에 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당장의 이익 보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출판 에이전트의 사명감도 새겨볼만 하다.
“작품 하나를 어느 나라에 파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멀리 내다보고 작업해야 한다. 세계 독서 시장에 나가면 작가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러시아의 톨스토이, 미국의 마크 트웨인, 일본의 하루키라는 식으로 말이다.”(34∼35쪽)
2부는 ‘에이전트의 고민’을 작가별·작품별로 녹였다. 한국 문학으로는 걸작인데 세계인이 즐기기에는 한계를 지닌 작품에 대한 솔직한 고민을 담았다. 하일지 이기호 권지예 이응준 구효서 심윤경 주영선 김훈 김별아 등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심윤경의
‘달의 제단’은 저자가 아끼는 작품이지만 아직까지 해외 진출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존구 생신 맞잡시어 족족유여(足足有餘)한 하물(賀物), 이바지 마련해주셨사오니 물물이 하갈동구(夏葛冬?)요”(‘달의 제단’ 23쪽) 같은 고어투의 언문 서찰 문구 등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이 상무는 추정한다. 책은 또 우리 문학에 대한 외국 에이전트들의 적나라한 반응을 담고 있는데 이는 우리 문학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3부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해외 진출에 도전하고 싶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이경혜 이금이 황선미 이외수 김진명 차인표 권비영 등이 대상이다.
저자는 끝으로 출판 에이전트가 활성화돼야 우리 문학이 만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거대 에이전시를 앞세운 일본이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스타 작가를 배출한 것처럼 우리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보다 전문적인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한국 출판 저작물 수출의 성과를 인정받아 2009년 책의 날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