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진홍] 대북 규탄대열에서 빠진 국회의원들
입력 2010-12-01 18:54
“우선순위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의원들… 연평도 피난민 심정을 아는지”
김대중 정부 때 만난 한 고위 관리는 남북관계를 이렇게 비유했다. “북한은 우리가 머리에 이고 있는 물이 가득 찬 독과 같다. 그 독이 깨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독 안의 물을 그대로 뒤집어쓰는 낭패를 볼 게 뻔하다. 그래서 독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그것이 우리 국익과 부합한다.” 당시는 대북 햇볕정책이 한창 위력을 발휘했던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의 심경은 전혀 아니다. 어쩌다 저런 못된 김정일과 한민족이 됐는지 속상하고 창피하다. 우리나라가 ‘김정일의 북한’과 이웃해 있는 건 숙명이나, 국가도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어 ‘김정일의 북한’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얼핏얼핏 드는 요즘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 김정일의 만행이 참으로 가관이다.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 사건의 여파가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연평도를 포탄으로 유린했다. 연평도 주민 대다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향을 그리워해야 하는 피난민 신세가 됐다.
연평도의 평화는 산산이 쪼개졌다. 팽팽한 긴장감만 흐르고 있다. 김정일이 앗아간 평화는 연평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해,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김정일과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르려는 김정은이 알량한 존재감을 대내외에 과시하려 언제 어디서 또다시 ‘미친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루마니아를 25년간 강압통치하면서 6만여명이나 처형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부인과 함께 1989년 총살당했다. 지난 7월에는 DNA 검사를 위해 묘지가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죽어서도 편치 않는 독재자의 삶. 김정일과 김정은의 운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김정일이 추가도발을 획책하지 못하도록 온 국민이 힘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곳곳의 갈등을 용광로처럼 녹여내 하나로 만드는 곳이 정치권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의 현실은 우울하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뒤늦게 대북 규탄결의안을 채택할 때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이 있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 그는 강경 대응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민가에 수십 발의 포탄을 퍼부어 평화를 짓밟은 김정일을 규탄하는 일이 급선무임에도 조 의원은 확전 가능성을 들어 규탄대열에서 빠졌다. 우선순위를 헷갈린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외면한 것일까. 우선순위를 도외시한 의원들은 또 있다. 남북대화 촉구 내용이 빠졌다는 등의 이유로 기권한 야당 및 무소속 의원 8명이 그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화’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지금은 대화보다 무차별 포격 도발을 자행한 김정일을 한목소리로 압박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도 김정일을 비난하고 있다. 대북 규탄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한 국회의원들에게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반역 행위’라거나 ‘북한의 제5열’이라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김정일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이들을 어떻게 평했을까. 아마도 기특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들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연평도 주민들이 인천의 찜질방에서 칼잠을 자고, 국민들이 김정일에게 공분을 표출하고 있는 와중에 국회의원들은 제 밥그릇을 챙겼다. 1년에 1억원이 넘는 자신들의 세비를 5.1% 인상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치부를 드러낸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자금법 개정도 진행 중이다. 연평도를 방문한 송영길 인천시장의 ‘폭탄주’ 발언 소동에 이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 소동은 허무개그 수준이다.
천안함 사태 당시에도 국회는 대북결의안 채택에 두 달 이상을 허비했다. 우선순위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국회의원들. 이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있다는 게 왠지 불안불안하다.
김진홍 편집국 부국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