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몰린 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대혼돈’

입력 2010-12-01 21:59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채권단 중 가장 현대그룹에 우호적이었던 외환은행마저 180도 태도를 바꿨고 현대건설의 최대주주이자 현대그룹에 가장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한국정책금융공사(KoFC)는 금융당국의 개입을 공식 요청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현대그룹과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대한 항의표시로 외환은행에 예치했던 거액 예금을 인출해간 사실도 새롭게 드러나는 등 현대건설 인수전이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운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외환은행=매각주관사인 외환은행이 1일 MOU 해지 가능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상 현대그룹으로선 치명타다. 외환은행은 그동안 KoFC와 우리은행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 잘못이 없다며 매각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유재한 KoFC 사장이 외환은행과 현대그룹을 강력하게 비판하자 사실상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김효상 외환은행 여신관리본부장도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기자회견에 앞서) KoFC와 의견을 사전에 조율했다”고 밝혀 채권단 간 협의를 통해 입장을 바꿨음을 시인했다.

이와 함께 김 본부장은 “자금조달의 위법성과 허위 사실 등은 물론 해당 자금이 그룹의 유동성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는 변함이 없으며 나티시스은행 예금도 전액 현금인 이상 입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혀왔던 기존 입장을 사실상 번복한 것이다.

KoFC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 동양종합금융증권과의 계약 사항을 금융당국에서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KoFC는 동양종금이 8000억여원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현대건설 입찰금액의 위임 여부, 풋백옵션의 투자조건, 풋백옵션 계약 시 현대그룹 자산 담보 여부 등의 3대 의혹을 제기했다.

◇현대그룹=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최후통첩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MOU에 근거해 합리적인 범위에서 채권단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겠다”면서 “다만 나티시스은행과의 비밀유지조항 등의 문제가 있어 채권단이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해온 KoFC와 현대차그룹은 강도 높게 비난하며 강경 대응방침을 밝혔다. 현대그룹은 이날 동양종금의 투자조건 등을 문제 삼은 KoFC 유 사장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차그룹에 대해서는 “채권단의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면서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조만간 서울중앙지법에 내겠다고 밝혔다.

만약 현대그룹이 채권단 요구를 거부하면 채권단은 주주협의회 전체협의를 열고 80% 이상(의결권 기준) 동의를 얻어 현대차그룹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 제출 거부만으로 MOU를 해지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어 법정다툼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가진 현대차그룹은 최근 외환은행에 예치했던 수조원의 예금을 인출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수조원대의 예금을 인출하는 등 현대그룹과 MOU를 맺은 외환은행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현대가가 시중에 나도는 소문대로 외환은행과의 거래관계를 단절할 경우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현대자동차그룹은 1일 외환은행을 압박했다. 혼란과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 예비협상대상자인 자신들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운영위원회 협의를 거쳐 양해각서를 체결하겠다던 외환은행이 비밀리에 변호사를 시켜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경위에 대한 해명은 외면하고 실사 강행 입장만 밝혔다”면서 “외환은행의 주관기관으로서의 업무처리에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현대그룹에 5일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자료제출을 하도록 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미 어떠한 서류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한 현대그룹 측에 유예기간을 준 것은 ‘전횡’이라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이 현대그룹과 체결한 MOU가 해지될 경우 후속절차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이 더 이상의 혼란과 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면서 “이미 깨어질 대로 깨어진 신뢰지만 지금이라도 본연의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사태의 진실과 책임소재가 분명히 가려질 때까지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적법하게 체결한 MOU 효력을 부인하는 현대차그룹의 끊임없는 이의제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채권단에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최정욱 기자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