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불편 괜찮아, 명품이니까”… 한국인이 유독 명품에 관대한 이유는

입력 2010-12-01 22:06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은 매장 안에 들어오는 손님 수를 제한하고 있다. 정해진 인원이 초과되면 다른 손님은 매장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의 루이뷔통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백화점 측도 손님들도 루이뷔통의 ‘줄을 서시오’ 요구에 불평하지 않는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이지만 명품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한 모습이다.

1일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내년 루이뷔통 면세점이 인천공항 중앙에 들어서는 것과 맞물려 서점, 카페 등 출국장 편의시설 일부가 재배치될 계획이다. 루이뷔통 면세점 입점으로 공항 안내도가 바뀌는 셈이다. 루이뷔통 매장을 위해 편의시설을 옮기는 것은 특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 명품 브랜드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백화점들의 명품 브랜드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명품 브랜드는 낮은 수수료, 높은 가격 책정 등의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특히 백화점이 입점 업체로부터 받는 판매 수수료는 국내 업체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정해진다. 지난 2월 한국유통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명품잡화 판매수수료는 매출액의 1∼5% 정도였다. 반면 국내 제조업체는 평균 26∼27%, 규모가 작은 업체는 35∼40%까지 수수료를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백화점들이 명품 브랜드 유치에 혈안이 된 것은 중산층 이상의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실제로 명품 매출은 올 들어 전체 백화점 매출의 10%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명품 매출액 규모만 보더라도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명품 판매로 얻는 이익도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백화점은 수수료로 실제 이익을 얻는데 명품 브랜드의 수수료율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 출점 하는 백화점이 늘면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명품 브랜드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며 “후발주자들은 수수료를 덜 받고 편의를 봐주면서라도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백화점들의 ‘명품 모시기’는 명품에 열광하는 소비 풍토도 한몫한다. 거리에 나가면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등 고가의 명품 가방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브랜드 가방은 거리에 나가면 3초에 한 번은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어 ‘3초백’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가짜 명품이 남대문과 이태원 시장을 장악한 지도 오래다. 대학생 김모(23·여)씨는 “가짜명품이라도 디자인이 예쁘고 품질도 좋은 데다 갖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서울의 한 백화점 루이뷔통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이모(38·여)씨는 “명품을 사기 위해서라면 줄 서는 것쯤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7월 발표된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세계 주요국 명품소비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명품 과시 행위가 나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22%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일본(45%), 중국(37%), 유럽연합과 미국(27%)보다 명품 소비에 훨씬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명품 선호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명품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완석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특별한 사람만 살 수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면 그것을 어떻게든 구하고 싶다는 특권의식에서 명품 선호 현상이 나온 것”이라며 “명품 브랜드는 이런 점을 마케팅에 이용하고 소비자들은 쉽게 그것에 순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불평등도 명품 소비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면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명품을 통해서라도 상류층에 속한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명품 소비가 급증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진단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