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리처드 손버그씨, 감동 어린 우정·아름다운 기부
입력 2010-12-01 19:36
한국인 시각장애인 대학생과 미국인 연방검사장.
이런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35년째 우정을 이어오면서 장애인 권리 증진에 관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강영우(66) 박사와 리처드 손버그(78)씨 얘기다.
1975년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시각장애인 강영우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 인근의 집에서 우산을 쓰고 흰색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집 앞 사거리 모퉁이를 돌 때 한 대의 차가 다가와 바로 옆에 섰다. 시각장애인이 빗속을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본 운전자는 학교까지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운전자 리처드 손버그씨는 차 안에서 자신을 연방검사장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이날부터 친구가 됐다. 올해로 35년째다.
손버그 검사장은 이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를 거쳐 조지 H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다. 법무장관 재임 시절 미국 장애인민권법의 산파 역할을 했다. 강씨는 한국 시각장애인 최초로 피츠버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장애인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노력했다.
손버그 전 장관은 유엔 행정부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강 박사가 유엔의 장애인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현재 두 사람은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공동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버그 전 장관은 2004년 피츠버그 대학에 ‘리처드 손버그 재단’을 설립해 장애인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강 박사는 그와의 아름다운 만남과 우정에 보답하고자 30일 워싱턴DC의 캐피털힐튼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 재단에 1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기금은 강 박사의 각종 강연 수입과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 인세 수익금을 모은 것이다.
손버그 전 장관의 부인 지니 손버그 여사(프린스턴 신학대학 이사)도 미국에서 최초로 장애인과 일반인의 통합예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예배를 볼 때 시각장애인은 점자 성경책이, 청각장애인은 수화 통역이 필요하다. 이런 난점을 해결해 주며 차별 없이 함께 예배를 보자는 취지다. 20여년의 이 운동에 힘입어 현재 미국 내에서 4000여개 교회가 통합예배를 보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