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8년째 복음전파 박수영 선교사 박에스더 사모… 역경 극복·선교 열정 ‘부창부수’
입력 2010-12-01 17:56
‘뇌성마비 선교사 남편, 뇌종양 찬양 사역자 아내.’
나이가 들수록 부부는 닮아간다지만 역경을 이기는 방법도 그럴까. 복음의 불모지 태국의 ‘물의 도시’ 촌부리에서 8년째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박수영(37) 선교사와 박에스더(36) 사모 이야기다.
박 선교사는 3세 때 뇌염 주사를 잘못 맞아서 장애인이 됐다. 전신을 가누지 못해 굿판도 여러 번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늘 외톨이였다. 남들은 바보라고 놀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손에 이끌려 나간 교회에서 영원한 친구를 만났다. 어린 나이였지만 약과 의술로는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신학교를 다녔지만 장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어 좌절과 방황을 하다 휴학하고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박 선교사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됐다. “너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있다. 너는 컴퓨터에 소질이 많지 않느냐.” 기도원을 나와 전문대학 컴퓨터학과에 들어갔다. 2년 동안 공부하면서 기사자격증도 땄다. 1학년 말에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DM 발송 프로그램’으로 1등상을 받아 돈을 꽤 벌기도 했다.
차츰 생활이 안정되자 못다한 신학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그러던 중 필리핀으로 선교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왔다. 거기서 ‘컴퓨터와 신학의 접목’이라는 구체적인 사명을 발견했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신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장애인 전도사를 받아주는 교회는 없었다. 고민하다가 러시아 선교사로 자원했다.
‘간절한 소망은 반드시 이뤄진다.’ 1997년 비자를 갱신하러 잠시 입국했을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극동방송 ‘장애인은 내 친구’라는 프로그램 진행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시베리아 칼바람을 녹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이 사랑의 씨앗이 됐다.
“막내야,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가 라디오 방송에 나왔어.”
당시 에스더씨는 언니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고 했다. 금요 철야예배가 끝날 무렵 전화를 걸었다. 무려 40분이나 통화했다. 월요일 오후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지금까지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 같은 인연을 맺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왔어요. 자매님을 만나려고 지금까지 홀로 두셨나봐요.”
그리고 20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러시아에서 첫 아이를 낳고 사역을 마치고 돌아 온 박 선교사는 백석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땄다. 2002년부터 5년 동안 태국신학교에서 신학생에게 컴퓨터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주민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도 열었다. 2006년엔 제1기 태국 사역을 마치고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시에 있는 리폼드신학대학원(RTS)에서 목회학 박사학위(선교학과정)를 수료했다. 미국에서 연구 안식년을 모두 마치고 2년 후 다시 태국으로 돌아왔다.
살만 하면 암에 걸린다더니 ‘건강은 묻지 마’라던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눈이 빠질 것 같은 통증에 구토까지 했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정밀 검사를 받았더니 의사도 수술할 수 없는 뇌종양이었다.
“3대 신앙의 가문, 흠 잡을 데 없이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병을 주시다니요. 불편한 남편과 두 아이는 어떡하라고요. 눈을 뜨고 발악을 하며 십자가를 쳐다보며 막 대들었지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게으른 종아, 선교사 사모라는 직분만 붙들고 있으면 다인가.”
에스더씨는 그때 일찍부터 택함을 받았으면서도 안일하게 살아온 과거에 대해 회개했다고 했다. 그날 그녀는 세상에서 그렇게도 부드럽고 달콤한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너를 붙들리라.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이 들리더군요.”
며칠 후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컴퓨터 단층촬영(MRI)을 했더니 아직 종양은 있지만 호르몬 수치도 정상에 가깝다고 했다. “의사에게 ‘하나님이 치료해주셨어요’라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도 그런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란노 열방워십 제1집-박에스더: 홀로 하나이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방콕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박 선교사 부부는 8년 동안의 눈물과 땀, 열정을 담아 만든 찬양곡이라며 CD 한 장을 내밀었다.
방콕(태국)=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