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무거운 삶 내려 놓고 천국여행 떠나신 ‘시래기 할머니’

입력 2010-12-01 17:37


지난 주일 저녁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셨나요. 무척이나 포근하게 내리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님이 계신 하늘나라도 이렇게 포근한 눈이 내릴까 무척이나 궁금하였습니다.

몇 개월에 걸친 공부 끝에 할머님이 처음 쓰신 글자는 ‘하나님 고맙습니다’였지요.

할머님이 가장 쓰시고 싶은 글자였습니다. 자기처럼 죄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생때같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다시 시집을 갔으나 그 또한 가난하기는 매한가지라, 어린 남매를 거둘 여력이 없어 그냥 모른 척하고 살았노라고 덤덤히 말씀하시는 할머님 얼굴의 주름은 지나온 삶의 무게만큼 깊이 패어 있었습니다.

“목숨을 이어붙이는 일이 얼마나 구질한 일인지 약사 양반은 모를 거야. 내가 내 자신이 정말 싫어지는 그런 기분.”

그렇지요. 밥을 입에 넣는 일에 급급해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할머님 심정을 다 이해하기에는 좀 버거운 일이었지요. 그렇게 살아오신 할머님의 한평생이 할머님 자신이나 서로 성이 다른 자식들에게 벗어버리기 쉽지 않은 큰 짐이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기 어려웠던 어머니라는 이름의 상처를 자신의 십자가로 등에 지고 참으로 무거운 삶을 사셨을 겁니다.

몇 해 전부터 동네 할머님의 전도로 할머님은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였지요. 교회에 가면 당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제일 좋다는 할머님은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는 일이 불가능한 할머님은 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소리를 내었습니다. 귀에 들리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너무도 소중했던 할머님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당신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안 듣고 집을 나간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에 수송아지를 잡고 온 동네 사람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설교말씀을 저한테 이야기하면서 하나님 같은 분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자기 속을 그렇게 썩인 자식을 받아들이고 잔치까지 베풀어 주는 그런 아버지를 둔 우리는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할머님이 글자공부를 하고 한 자 한 자 글을 익히면서 성경책 읽기와 찬송가 부르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글을 완벽하게 읽기는 어려웠으나 모르는 구절이 나오면 제게 물어보고 하시면서 한 장 한 장 읽고, 공책에 필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버스를 탈 때 차번호를 물어보지 않고 자신이 읽어 알아보고 버스를 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하시면서 환하게 웃는 할머님의 미소는 참으로 고왔습니다. 교회 구역예배를 드리고 약국에 들르신 할머님은 기운이 다 빠지고 매우 힘들어 보이셨습니다. 걱정돼 안부를 챙기니 “나 이제 교회 못 다닐 것 같아.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하시면서 끌탕을 하셨지요.

무슨 일이 있으신지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하니 그때야 할머님은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문제는 헌금이었습니다. 구역예배를 드릴 때 할머님은 적은 금액을 헌금했는데 구역식구 한분이 헌금액수가 적다고 뭐라고 했고 그게 시작이 되어 그분과 조금 언성을 높여 다투었다고 하셨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이제 교회 못 다니겠다고 울먹거리셨지요.

그런 할머님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다 보니 물질이라는 숙제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은 물질의 유혹과 어려움에 빠지곤 하니까요. 신앙을 이제 겨우 키우기 시작한 할머님께는 무겁고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일 것입니다. 교회 또한 세상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이기에 세상의 나쁜 법칙이 적용되기도 한다는 이야기, 조금은 어렵고도 힘든 이야기를 할머님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기쁘게 받으신 예수님의 자애로운 마음을 할머님께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였지요. 믿음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고 우리도 다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 있는 사람들임을, 자녀 된 격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할머님께 나누어야 하는데 그리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할머님께서 행복한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신 할머님은 이제 아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 그 격에 맞는 삶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이미선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