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 회고록] 전남 무안군 삼향면 정순금 할머니

입력 2010-12-01 18:09


“목사 아들 앞서 대님서롱 심방 대니는 게 젤 부럽다 했어라우”

정순금 할머니의 신앙 인생은 올해로 62년째다. 스물일곱 되던 해 넷째 딸까지 하늘로 보낸 뒤 액땜한다던 사금파리를 깨트려 버리고 예수를 영접했다. 이후 태어난 7남매는 별 탈 없이 잘 자라줬다. 자녀 가운데 목회자가 나왔고, 선교사도 나왔다. “목사님(아들) 앞서앞세워 대님서롱다니면서 심방 대니는 게 젤 부럽다 했어라우.” 내년이면 구순인 정 할머니. 전남 무안 일로읍 삼향면에서 1등으로 예수를 믿었다는 정 할머니는 신앙 이야기부터 꺼냈다.

낳으면 죽고 또 죽고

내가 스물일곱에 예수 믿었소. 그 전엔 안 믿었제. 우상 섬겼제. 영감이 독신(15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음)이여. 큰 시아제는 사춘 시아제. 그 시아제가 제사 지내러 오면 밥을 얼른 담어 놓고 가 버리면 밥 그릇에 부사<부어>버리고 그러고 살았어. 우상 안 섬겼어. 예수라고 믿고서는 절대 우상 안 섬겼어. 감 따가든 배 따가든 딱딱 따간다는 귀신을 못 할라고 거시기 밥 담아놓고 하겄어. 자식들 죽어버렸상께<버리니까>. 자식들 한나<하나> 키고 자와서<싶어서> 예수 믿었어. 저기 예수 믿고 칠남매 살었지.

한 동네가 있어도 그 냥반들은 예수 믿었어. 생전 오란 소리도 안합디다. 그띠 시상에는. 그래도 내가 자슥 기도 하려고 거시기 박 집사님이었어. “박 집사님이서 나도 일로 교회로 나갈라요.” 열심으로 새벽교회도 다니고. 거시기로 철둑 넘어서 댕겼어. 멀어.

육이오 때 목포라는 동네에 거시기가 많앴어. 그 머시기 사람들 수건 두르고 오데. 뻘갱이들이. 그 사람들 다 죽었서롬 인자. 거시기 빛이 빤해 비칭게 미영<실 짜기> 갈았어. 미영 갈면 둘이 와 갔고 왜 예수를 믿냐 그럽디다. 그때는 가슴이 덜렁덜렁했지. 껌은 것이 요러고 딱 막고.

그쩍에는 거시기 예수님 말도 막갓 믿응게. “나 자식들 하나 키워볼라고 예수 믿소.” 내가 그랬서라우.

“자식들 낳으면 죽고 낳으면 죽고 하는데 어쩌겄소.” 둘이 나가서 속짝속짝<쏙닥쏙닥> 하데. 무서와서 말도 못허고. 아이 그냥 창대 들고 막 기냥 무서워. 군대가 막 지내가는 데 무서와. 여기 사람들 콩 밭에가 숨는 사람들도 있고 산등에서 총 맞아 죽은 사람들 또 다리 뚝 있는데서 사람이 마이 죽고 그랬서라우.

여간 이쁜 춘예

나 산 일 생각하면 까막까막해요.

아휴 열일곱에 시집 왔는디. 넷 죽었어. 아들 셋 죽고잉 딸 하나 죽고.

잠 안 올 때는 다 생각했어도 막상 이렇게 되놓고 낭 게 헐 말이 없어요. 자식 욕심 도둑질 안 할 넘 씨도 없어요. 두 살씩도 먹고 한 살도 먹고 쪼까서 키다가 그냥 죽고 죽고. 우리 딸은 두 살 먹어서 정월 초하루 날 낳는디. 딸 낳다고 첫국밥도 안 해주데. 키 큰 당골<무당>이란 사람 있어. 흔들흔들함서 저 들 가운데 있제 거기서 물 여다가 밥해서 줍디다 그 사람이. “딸 나면 못허고 아들나면 못허다고 밥도 안 해주여.” 그래 갖고 그 사람이 밥해줘서 먹고 그래 살았어. 그땐 예수 안 믿었지.

가시나 여간<매우> 이뻤어. 춘예. 이름이 춘옌디. 우리 가시네 죽음서는 이렁고 있응게. 애가 죽는 데도 시글세<스르르> 잠 오데. 꼭 꿈말로 울먹였어. 할매가 웃통 할딱 벗고 앉아서 징을 치데. 징∼징. 이것이 머시냐 하고는 퍼뜩 깨버렸어. 조리 잡은 쪽박을 내가 마당에 팍 깨버렸어. “어떤 넘의 굿이 백세금팔<사금파리> 팔아 먹을라고 우리 집에 왔더라우!” 작은 엄매한테 하면서 다 흐쳐 버렸어. “모레가 교회다(모레 교회 갈거요)!” 딸 그거 망지막 죽음서로 모레가 주일이다면 에이 나도 일로교회나 나가버려야 쓰겠다 그래서 나갔서라우. 여기서는 질 일등으로 믿었제.

술 좋아하던 영감

영감? 자식들(자식 잘 키울) 욕심으로 당신도 집사까지 되고 일흔 여덟에 가버렸어.

이집서 살았어. 우게가<위에> 오두막집이 있었어. 옛날 담집이데. 이 집을 내가 지슴서로 우리 큰 아들을 낳았어. 그 쩍전에는 꼬마둥이를 델구 살았는데 꺼적대기<짚을 두툼하니 엮은 것> 속에서 받아먹고 그렇게 살았어. 영감님이 일을 많이 못애 잘. 몸도 안 약애. 일꾼을 여러 해를 델구 살았지. 꼬마둥이는 소맥잉게 거시기 ‘깔비(일꾼 이름)’라고.

영감은 또 중간에 징용 안 갔다고 감옥소다 들다 가다 놔 버렸데. 그래갖고 나도 면회 댕이고 그랬어. 구제소에 따땄해서 (밥을) 중게(싸줘서) 이고 갔어. 빰을 딱 쌔려부려<때려 버려> 일본 사람이. 쌔려부링게 밥도 엎어버리고 국도 깨지고 그랬지. 그랬는데 낭중에사<나중에> 내가 또 떡인가 모싱가 해갔는데. 쪼시<조금> 싸 갖고 갔더니 일본사람이 뭐시냐고 하더만. 시방<지금>도 눈에 뻔해. 목포 감옥소로 데려가 버렸구만. 정월 초열흘날 가갔고 칠월 열 셋날인가?

시이모가 이고 홋 겉 입혀서 그러고 와서 잔치 벌렸어. 그래 갖고 우둘투둘 몸띵이가 그러데 콩독 올라서 그랜다고 하요. 동네 사람이 문둥병이다 그러더만. 근데 낭중에는 밥 먹고 상게<사니까> 싹 다 바서부러<없어져버려>. 콩독이 올라 그렁겨.

당숙모가 중신을 했으요. 나는 죽어도 안 온다고. 열일곱 살 먹은 게 뭐 속이 있겄소. 친정 어마이도 울었어. 몽탁면(몽탄면)에서 나는 왔제. 아래로 안 보낸다고. 여기는 삼향면이라 아래지. 않는다고 했는데 친정 아버지가 술을 좋아가지고. 우리 영감이 서숙<조>을 빠숨서로 술을 받아다 줬던 것이여. 영감이 선보러 왔어. “총각 좋더라! 내 머리도 깎아주고. 좋더라. 나 술도 받아다주고 좋더라 그리하자.” 어매하고 나는 막 안한다고 울었어. 그래 갖고 헐 수 없이 아버지한테 졌지. 당숙모가 그루 안가면 너그 신랑이 쫓아온다. 어따 얼마나 가심이 벌렁 벌렁해야.

할아버니는 열아홉에. 와따 머리알로<머리카락을> 싹 깎고 옹게 보기 싫어 죽겠더마잉. (나는) 전에는 이쁘다 했어라우. 내가 성질이 급해 갖고 일도 번쩍 같이 해부러. 다먹기<달리기>를 잘쳐. 떨다바라 병기<떴다봐라 비행기> 송천댁이라고. 동네서 이름도 그렇게 지었어.

첨엔 맘에 안 들어도 자식 나불고 상게. 시방 같으면 그눔은 확 떨어버리고 이혼이라고 하지만 그러면 큰일 날 줄 알고. 술만 받아주면 거시기 있다가도 좋아서 다 풀려버려 또 삐쳐 갔다가도. 주정뱅인 아닌디 술을 좋아했어.

성격은 좋아. 농사일도 다 갈쳐주면서 당신 안함서도 다 갈쳐주고 그래. 성격은 좋아. 한아부지<할아버지> 한아부지 우리가 항렬이 높응게. 다 좋아해.

기도로 살린 둘째 아들 이 목사

참말로 우리 목사 된 둘째아들이 아따 죽다 살았소. 죽었다 깼다 꼭 거시기항게 시아제보고 오라고 했더니. 그때는 보리 치는 세상이라. 보리를 탁탁 도리깨를 치데. “죽었소 살았소 얼른 갑시다.” “가만있소 살아났소.” 찬송하고 기도하면 살아나. 또 죽어버리고 또 죽어버리고 두 번을 죽어. 나중에는 괜찮아가 살았어.

의사가 문안 갔지. 그 의사가 확인함서 잘 가시라고 나강게 울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울어 애기가. 두 살 묵었어. 또 큰 아들이 설사를 피똥을 하데. 거거 깨다면 정신 들고 이거 깨다면 정신 들고. 참말로 죽겄지잉. “우리애이 어요?(우리애 어때요)” 내가 그랬어. “이제는 괜찮허겄소.” 그러데.

(자식들이) 봉투에다 마 담아갖고 가고 그래. 이러고 학교 가다가도이 목포(로) 다닝게. 여따 쬐깐한 성경책 있어 거런 놈 넣고 다님서 전도하고 다니고 그랬어. 나는 학교 늦으면 어쩔래 어쩔래. 그래도 전도하고 다니고 그랬서라우.

평생 전도

전도 많이 했지.

그렁께 거시기 구설수도 들었지. 나보고 예수 믿는다고 동네서 누가 한 사람도 안 믿고 그 집 한 가호가 믿었어. 시방은 다 예수 믿고 나 성공했다 해여. 복남이 어무이. 죽음서도 그래요. 내가 예수믿고 성공했어이. 내말 딱 알아듣고 꼭 그래야.

한 사람은 근데 목사님 봐야 쓰겄는데 꼭 이러고 앉아. 이름이 머시오. “나는 김동림이어라우.” 그 사람 시방도 믿고 산다우. 믿는 자식들도 있고 안 믿는 자식들도 있고. 그럼 또 적고(전도 리스트). 내가 의문이 나도 적는 것을 좋아했어. 재복이 어마이 쩌 우에. 거시기 이름이 머시냐. 호삼이. 호삼이 할매를 또 내가 밭에다 “거시기 이름 좀 알려주지?”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도 내가 댕기고 집사까지 되었단가. 구역예배 드리면 여간<아주> 맛있는 과자 사서 허고 그랬어.

내가 공은 들였소. 육촌 동서가 송산서 사는디. 그 동서가 시집옴서롱 아파싸서. “당서도 교회나 나당기소.” 임동찬 목사(당시 삼향교회 담임목사)님도 오래 돼았어. 그냥반 데리고 갔어. 방에다 예배 드리는데 실꾸리 하나밖에 없데. 그것을 당숙모는 어디 이사 가면 정성스럽게 싸 갖고 그래갖고 이사간 모양이여. ‘그것이 없어버려야겠다.’ 내가 마당까지 가서 꼬실러 버렸어<불 태워 버렸어>. 어따 버려벙게 쥐똥이 하나지고<한가득 이고>. “와따 이 쥐똥 갖고 우상 섬겼단가 보다. 아이고 시원허다.” 저 거시기 할렐루야 기도원 다니고 그 사람이 항상 아프더이 이제는 안 아퍼. 예수 잘 믿어 권사까지 되옵시고. 아따 극배마을(현 동네)은 아주 아주 이빨 안 들어가(전도가 힘들어).

한 평생 같이 살다 간 청상과부 언니

(같이 산 셋째 언니가) 청춘과부<청상과부>로 살었지. 자식도 안 나보고. 그러니께 큰 애기로 가버렸어. 큰 애기로 살다. 이 동네 다 알제. 2월 달 엔가. 정정하던 안했어도 그래도 고생은 안하게 했어. 내가 모시고 살았당께.

언니 죽고는 무섭데. 어째 꼭 어이어이 하는 것만 갖고. 어이 소릴 잘해. 나 부르는 소리. 어이 동생. 꼭 그런 소리만 나는 거 같고. 무사 죽겄어. 드러누워 찬송부르다 기도허다 울다. 그러다 밤새고.

혼자 사제. 나 혼자 사제.

식사 잘해라우. 잘 헝게롱 이러고 살제. 여기서 이러고 한자 못 살어 밥 못해 먹으면. 그렁게 우리 언니가 내가 서울 가 있응게 밤에 전화가 왔더라고. “나 밥 떨어졌어.” 내가 모시고 살았당게 60년 동안을. 우리 손지보고 컴퓨터로 차편 있는가 바라이. 밤차 밖에 없네. 오메 어쩔까나 고놈 타고 갈란다. 밤차타고 갔는데 역전에가 내려농게 사람 한나도 없어. 내가 어떻게 걸어갈거나 싶어. 오메 어째할꼬. 어떤 청년이 하나 쑥 나서데. “나 저 끝배로 가라오.” “그럼 내 차 타입소.” 그 냥반이 태다줘서 여따 내려줘서 왔어이. “오메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그때는 정신하나 없을까 남매 델구 왔던데 차표라도 끊어 줄건디.

내 소원이 우리 자녀들 칠남매 시방도 그러지. 가정 가정 건강이 제일이랍니다. 건강 주시고 축복주시 옵소서. 한자<혼자> 이러고 앉게서 허다 허다 새끼들 보고 잡으면<보고 싶으면> 눈에서 눈물 나오고. 허다가 우다가 찬송하다가 내가 한자 이러고 영광의 박수 치고. 찬송 (머릿 속에) 꽉찼지잉.

새벽기도 여서 40일 기돈가. 하루 아채<아침> 빠졌는가 그러고 꽉 당였어. 눈이 이렇고 와도 헤치고 다님서 허고. 내 삽도 하나 끈지러져<부러져> 버리고. 글? 내가 또 예수 믿게 되게 성경 보고 찬송 보고 항게 어문은 알제. 청지기대학도 졸업 맡았지. 목사님이 세밀하게 가르쳐라우. 권사 안수는 일찍 받았제.

그라고 거스기 내 생명 가는 것이 젤 원이요.

어서 하나님 내 생명 이 모습 이대로 가만히 내 생명만 끊어가 주소 그래. 내 생명만 데려가 주소.

기자 양반, 아이 둘싯은 돼야 사써

십일조 허제. 감사헌금도 허고 해야제. 감사헌금 허고 또 권사헌금, 거시기 여전도헌금, 선교헌금 다 해야지. 돈 생기면 해. 선교헌금 집사들 권사들 안하는 사람 많애. 아이고 목숨을 내놓고 선교하러 갔는디 안 해서 쓰겄소.

돈 많이만 벌면 뭐혀. 건강이 축복이여. 그라네요?<그렇지 않아요?> 돈 많이 있어도 다 죽는 거 보슈. 돈 많음 못해요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어지고.

언제든지 건강주시고. 도처에 일 열심히 잘하고. 주의 일 잘하고.

세상 사람은 예수 믿는 거 예수쟁이 예수쟁이 그런다고. 쪼깐 잘못하면 뭐시 저러냐고. 입조심도 해야 하고. 교회 대니면 입조심도 해야 써라우. 교회 믿기도 어려와로<어려워요>. 입이로<입으로> 나오는 말 대고도<대로> 해버림 돼요? 세상사람한테 욧구럭<흉> 밖에 안돼. 하나님한테 덕도 안 되고. 꼭 할 말만 해야 쓰고 욕도 안해야 쓰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어. 성경 말씀이. 내 속으로는 착실하게 하고 정결하게 한다 하지만 사람인고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많지 질랍디요<싶어요>.

다른 사람들도 살아야 쓰고. 다 예수 믿고 살면 얼마나 좋으까. 아이고 이 부락이 다 예수 믿으면<믿게> 깨지고 녹여지라고 기도도 해. 그래도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 것만 거시기하고 돈만 알고.

기자 양반들도 다 예수 믿을까? 그래 잘했네. 맷살 잡쉈수. 어리네. 얼마 안 묵었네. 참말로 어리네. 애기 시방. 아들? 잘했네. 아이 그래도 둘 싯은 돼야 사써. 아들 하나 낳았으니 둘은 낳아야 써. 나는 막둥이 마흔 싯에 낳았어.

■ 연보

1922년 5월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서 2남4녀 중 막내로 출생

1938년 무안군 삼향면 이상선(당시 열아홉)씨와 혼인.

1945년 장녀 이금례 출생

1950년 장남 이석형 출생

1954년 차남 이경석 출생(현 안산한마음교회 담임목사)

1956년 차녀 이경순 출생(현 일본 거주)

1959년 3녀 이경심 출생

1960년 4녀 이화심 출생(현 선교사)

1963년 3남 이삼형 출생

1997년 남편 이상선씨(집사) 작고

■ 새에덴교회는

전남 무안군 맥포리 삼향교회에서 2001년 분립된 교회다. 임동찬 전 삼향교회 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임 목사는 전북 부안읍교회 부목사로 시무하다 1986년 삼향교회로 부임했고, 새에덴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정순금 할머니는 임 목사를 따라 새에덴교회 초대 교인으로 합류했다. 출석 성도는 60여명. 70∼80대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소속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다. 현재 삼향면에는 새에덴교회를 포함해 15개 교회가 있다.

무안=정리 이경선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