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자장면? 사랑 곱빼기!… 자장면 봉사대장 조선족 윤인호 주방장
입력 2010-12-01 17:42
“지금이야말로 군 장병들을 응원할 때예요. 연평도 포격 때 대응이 미흡했다는 등의 말들이 많아요. 우리 군의 전투능력까지 못 믿겠다는 투죠. 하지만 이들 잘못이 아니에요. 명령만 있었다면 북한을 박살냈을 거예요. 우리 장병들이 자책하지 않도록 이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지난 27일 경기도 연천의 한 신병교육대에서 ‘자장면 봉사’를 한 서울 우면동 창성교회 장제한 목사의 말이다. 창성교회 교인 20여명은 이날 부대에서 직접 면을 뽑고 자장을 볶아 장병 700여명에게 자장면을 제공했다.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장병들은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장면, 짱이에요. 짱”을 연신 외쳤다. “한 그릇 더요… 두 그릇씩 먹어도 돼요?”라며 응석을 부렸다.
자장면은 흔하디흔한 음식이다. 부대 밖이어서 그렇지, 최전방 지역에도 중국집은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마음만 먹으면 먹는다. 하지만 부대에서 자장면은 여전히 특별식이다. 돈이 있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장병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자장면을 꼽기도 한다.
이날 이들의 미소는 특별식 때문만이 아니다. 봉사자들의 격려가 더 큰 이유다. 장 목사는 “격려랄 것도 없다. 봉사 나온 교인들이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하면 그것에 감동 받는다”고 전했다.
봉사자들은 대부분 50, 60대 여성으로 장병들에게 엄마뻘이다. 또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는 말은 엄마한테나 듣는 말이다. 봉사자들의 말 한마디에 가족애를 느끼는 것이다. 장 목사는 “이 감동은 책임감으로 이어진다”며 “장병들은 엄마, 가족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군복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전방 GOP도 출동…5년째 봉사
창성교회 자장면 봉사는 5년째다. 지난 2005년부터 군부대를 비롯해 경찰서 보육원 교도소 등을 방문,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최전방 GOP도 갔다. 봉사대원들이 조를 편성해 GOP초소에서 직접 자장면을 만들어 줬다. 개척교회도 지원했다. 공짜로 자장면을 대접한다고 하면 교회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조선족 윤인호씨(50)가 주축이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했다. 중국 목단강시에서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제법 규모 있는 식당의 부사장이기도 했다.
윤씨는 1992년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 1년 반은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일거리가 매일 있지 않았고, 번 돈은 중국 가족에게 부쳤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서울 봉천동의 한 중국교포쉼터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중국집을 소개했다. 이후 소문난 중식 주방장이 됐다. 스무 살부터 중국 현지 식당에서 일했기 때문에 요리 등 식당일은 자신 있었다. 한때는 오라는 중국집이 너무 많아 고민했다.
그를 교회로 이끈 이는 지금의 아내 김명희씨(52)다. 윤씨는 쉼터에서 자원 봉사하는 김씨의 모습에 반했고, 함께 살자고 매달렸다. 김씨가 조건을 달았다. ‘교회에 함께 나갈 것.’ 윤씨와 김씨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신방을 꾸몄다. 부부는 창성교회에 출석했다.
1억원 들여 이동식 주방 만들어
장 목사가 어느 날 봉사 이야기를 꺼냈다. “자장면 뽑는 기술 뒀다 뭐해요. 좋은 일 한번 합시다.” 윤씨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자장면 봉사팀이 꾸려졌다.
처음에는 수원시의 한 지체장애인 시설을 찾았다. 윤씨와 교인 20여명은 지체장애인 40여명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꺼번에 40인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봉사대원 대부분이 주부들이었지만 가정에서 요리하는 것과는 재료의 양부터 크게 달랐다. 야채 썰기, 자장 볶기, 면 뽑기, 그릇에 담기 등 모든 일에 윤씨의 손이 필요했다.
주방시설도 문제였다. 중국요리를 하려면 화력이 센 버너가 있어야 했다. 움푹 파인 큰 프라이팬과 면을 삶는 대형 통도 필요했다. 첫날은 가스레인지와 기존의 주방기구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봉사 횟수가 많아지면서 제대로 된 시설이 절실했다. 군부대 봉사 때는 더 그랬다. 양도 양이지만 식사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면 삶는 대형 통 등 꼭 필요한 주방기구부터 청계천 상가에 주문했다. 그렇게 들여놓기 시작한 주방기구가 지금은 반죽기계 2개, 대형 통 5개, 면 뽑는 기계 4대 등으로 늘었다. 윤씨는 “자장면 집 주방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1t 전용 트럭 두 대도 마련했다. 주방기구는 물론 식기, 나무젓가락까지 갖췄다. 모두 1억원 가까이 들었다. 3.5t 냉동차 마련을 위해 기도 중이다.
필리핀에선 이틀간 1만4000인분 대접
해외 봉사도 다녀왔다. 지난 설과 추석 때 필리핀 쓰레기 매립지인 빠야따스와 몬탈반지역을 찾았다. 주방 기구는 미리 배로 보냈다.
이곳에서 이들은 이틀간 자장면 1만4000인분을 만들어 공짜로 나눴다. 오전 8시부터 준비해 재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자장면을 만들었다. 양파 20㎏짜리 70자루, 밀가루 20㎏짜리 80포대가 사용됐다.
장 목사는 “필리핀은 원래 검은색 음식은 잘 안 먹는다. 하지만 이들이 좋아하는 양파와 돼지고기 등을 현장에서 직접 썰고 끓여 내놓으니까 믿고 맛있게 먹더라”고 했다.
지난 27일 군부대 봉사 이틀 후 경기도 분당 충성교회(윤여풍 목사)에서 자장면 봉사가 이어졌다. 아시아지역 목회자세미나에 참석한 현지인 목사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신학교 동기인 윤여풍 목사가 장 목사에게 부탁했다.
이날은 윤씨와 교인 9명이 팀을 이뤘다. “너무 짜게 하지 마요. 이거 물 더 섞어서 끓이세요.” 윤씨는 주방기구를 설치하고, 간을 보느라 바빴다. 봉사단의 남자는 장 목사와 윤씨밖에 없다. 무거운 기구 이동, 설치 등은 모두 윤씨 몫이다. 버너에서 기름이 새자 그는 연장통에서 스패너를 꺼내 볼트를 조이고 불을 댕겼다. “아이고, 난 지금 바빠요. 조금 있다 해요.” 음식을 준비하는 3시간 동안 말도 못 붙이게 했다.
자장면 맛은 “당연히 좋다”는 반응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외국인은 “중국 현지 요리보다 더 맛있다”며 “굿”을 연발했다. 충성교회 박매순(57·여)씨는 “돈 주고 사먹는 자장면에 비교하면 재료의 종류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면 삶은 지 1분 이내에 먹어야 제 맛”이라며 “배달한 자장면과는 맛 차이가 확연히 날 것”이라고 웃었다.
한국인 돕는 조선족? 나도 한국인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은 여전히 소수다. 무시당하기 쉽다. 윤씨 역시 그랬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일단 얕잡아 봐요. 악덕업자도 많아요. 막노동 일당으로 한국인은 10만원, 조선족은 8만원인데, 그것을 떼먹어요. 저도 몇 번 당했어요.” 그런 한국인을 지금 돕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한국 사람이 다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저도 이제 한국인이니까요.”
교인들은 이제 자장면 만드는 데 베테랑이 됐다. 주일학교 아이들까지 봉사 현장에서 일손을 거든다. 나무젓가락, 단무지 등을 상 위에 놓는다. 열정도 뜨겁다. 생계를 위해 식당일, 파출부일을 하는 봉사자들도 있지만 봉사를 위해 일정을 조정한다.
교회는 ‘자장면 헌금’ 항목을 만들었다. 별도 헌금 봉투도 있다. 충성교회에서 배식을 담당한 황원자(58·여) 전도사는 “돈과 시간을 우리가 부담해서 축복도 우리가 받자는 것이 목사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요즘 집에서 논다. 봉사 일정이 너무 많아서다. “고용되면 봉사가 어려워요. 자장면 주는 것은 하루 하는 것이지만 반죽하고 장 보는 데 하루가 더 걸려요. 요즘은 한 달에 최소 5번씩 봉사 나가니까 일자리가 있어도 갈수가 없네요.” 그는 가끔씩 중국집 1일 주방장으로 일해 생활한다.
그래서 윤씨의 소원은 하루라도 빨리 중국집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자장면 봉사, 마음껏 할 수 있게.
글 전병선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