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평도 도발] 백령도 주민들 뿔났다… 北 포격 때 軍가족만 대피

입력 2010-12-01 04:03


30일 오전 11시30분쯤 백령도 중심가인 진촌리 ‘햇님마을’ 군인아파트 대피소를 찾았다. 백령도에 주둔하는 기혼 군인가족 60여 가구가 비상시 이용하는 곳이다. 대피소에는 비상식량 7상자, 담요 2상자, 구급상자가 비치돼 있고 유선전화기와 전기조명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33㎡(10평) 남짓 크기의 대피소는 콘크리트 벽에 허름하기는 했지만 대피소 입구에 식수용 수도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기본 시설은 완비돼 있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민간 주택가 주민용 대피소는 크기는 같았지만 군인아파트 대피소와는 차이가 컸다. 냉기를 막기 위한 스티로폼만 깔려 있고 쓰다 만 양초 세 개가 있었다. 전기 시설은 아예 설치되지 않아 천장의 전구 설치 부분은 부서져 구멍이 나 있었다. 비상식량과 담요는 물론이고 비상 연락용 전화기나 식수도 없었다. 주민용 대피소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한 주민은 “백령도는 최전선인 만큼 군과 항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번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군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백령도 해병대 6여단장은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진 다음날인 지난 24일 군인가족용 대피소 5곳에만 비상식량, 전기 시설, 식수, 전화기, 모포를 설치 및 비치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령도 주민의 군에 대한 불만은 대피소 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백령도에 주재하는 300여명의 군인가족은 거의 빠짐없이 대피소에 들어갔다. 반면 주민은 군의 별다른 인솔·관리가 없어 대피소로 피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포격 다음날인 24일 백령도 군인가족 수십 명이 섬을 나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의 불만이 폭발했다. 주민 사이에선 “군이 민간인 보호보다 위험 지역에서 제 식구부터 빼내려고 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제가 확산되자 여단장은 각 예하 부대에 ‘군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군인가족들 입단속을 시키고 백령도 피난을 자제시키라’는 취지의 구두지시를 지난 26일 하달했다.

백령면사무소는 30일 현재 백령도에 주민등록을 둔 5078명 중 군인가족과 민간인 등 600여명이 섬을 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해병대사령부 정훈공보실장 김태은 대령은 “군은 항상 주민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세를 사수해 왔다”며 “군인 가족이 조용히 섬을 빠져나갔다는 주민들의 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백령도=글·사진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