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11-30 18:02


(21) 십자가 앞에 서자

십자가가 다만 사형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매일 십자가 앞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사순절 때만 십자가 앞에 설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앞에 서야 한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십자가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거기서 못 박혔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다.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나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보인다. 최고의 영성생활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가 그랬다. 그는 매일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소리 높여 찬미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십자가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을 구속하셨으니 우리가 주를 사모하고 찬양하나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집중했다. 십자가 앞에서 엎드리고 찬양하고 그 앞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의 삶의 모든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왔다. 그가 청빈하게 산 것도, 그가 억제할 수 없는 기쁨 속에 산 것도, 그가 동굴에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 것도, 베르나 산에서 오상의 체험을 한 것도 모두 십자가로부터 나왔다. 누구나 십자가 앞에 설 수 있고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십자가의 은혜를 받는다.

장애인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십자가 앞에 섰다. 얼마 후 아들이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왜 우니?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보이니?” 아들이 말했다. “예, 예수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왜?” 아들이 한참 있다 말했다. “슬프시니까요.” 아버지가 물었다. “왜 예수님이 슬플까?” 아들이 말했다. “제가 두려워하니까요.” 십자가에 달린 주님은 그날 그 앞에 선 작은 장애인 소년의 두려움을 보셨다. 소년의 두려움을 아신 주님은 우리의 두려움도 아실 것이다.

11세기의 성자 제롬도 어느 날 베들레헴에서 성경을 번역하다가 십자가 앞에 섰다. 기도하는 중 주님이 그에게 나타났다. 제롬이 물었다. “주님, 제가 주님께 무엇을 선물하리이까?” 주님이 말했다. “하늘과 땅이 다 내 것인데 네가 무슨 선물을 내게 주겠느냐?” 제롬이 말했다. “이 성경을 다 번역하여 그것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했다. “네가 정말 나에게 선물을 주겠느냐? 그러면 한 가지만 다오. 네 죄와 고통을 다 나에게 다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니라.” 십자가의 예수님은 제롬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알고 계셨다. 주님이 원하신 것은 제롬의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위대한 성경학자 제롬에게도 은혜가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은혜가 필요한가?

십자가는 은혜의 거울이다. 그 앞에 서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 동시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의 슬픔과 두려움과 죄가 다 노출된다. 우리는 죄를 가진 존재인지 안다. 또한 두 손 벌려 구걸하는 걸인처럼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도 안다.

성 어거스틴이 말한 바와 같다. “주께서 저를 사랑하심으로 저를 사랑스럽게 하셨나이다(Quia amasti me, fecisti me amabilem).”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앞에 서자. 그가 우리를 사랑할 때만 우리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