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아니다” 키코소송 은행 손 들어줘
입력 2010-11-29 21:39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 계약이 자체로는 불공정하지 않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실상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만 계약 과정에서 은행이 고객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해 앞으로 해당 기업과 은행 간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여훈구),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박경호),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황적화), 민사합의32부(부장판사 서창원)는 29일 키코 사건 91건 118개 기업에 대한 판결을 일제히 선고했다.
이들 재판부는 “환헤지는 장래 시점의 환전 환율을 고정시켜 환율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을 방지하는 한편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도 포기하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환율이 안정적으로 변동될 경우 환차익을 얻고 급격한 하락·상승 국면에서는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한쪽에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계약 체결 이후 사후적인 시장 상황 변화만을 이유로 계약상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와 민법의 대원칙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은행이 개별 기업의 규모와 재무구조, 외화 유출입 현황 및 예상치, 환헤지 경험 등 기업 여건에 적합하지 않은 무리한 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되며 상품의 위험성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일부 은행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고객 보호 의무 위반에 따른 은행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투자를 결정한 기업의 경영책임을 감안, 배상액을 손실의 20∼5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전체 118개 기업 중 19개 기업에 대한 은행의 손해배상액을 620만∼13억9600만원으로 책정하고 나머지 99개 기업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은행연합회 이병찬 부장은 “은행이 판매한 키코 상품이 적법한 계약 절차를 밟았고 불완전 판매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대부분 소송에서 은행이 승소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원섭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장은 “상품 자체의 적합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2007년 전후 900원대의 환율을 예상하고 키코 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환율이 1500원대까지 상승해 상당한 환손실을 입자 “키코 계약이 불공정한 계약이었다”며 무더기 소송을 냈다. 은행은 상황 변화를 이유로 계약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이번 선고 사건을 제외하고도 50건의 키코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안의근 고세욱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