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매각 도장 찍었지만… ‘불씨’ 남아

입력 2010-11-29 21:33


말 많고 탈 많던 현대건설 주식 매각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은 29일 현대그룹과 MOU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종결되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양상이다. 채권단은 소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했다. 채권단 사이에도 균열이 생겼다. 법적 책임을 우려한 외환은행은 MOU 체결을 강행했지만 정책금융공사와 우리은행은 의혹이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채권단을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전에 반전…찜찜한 마무리=현대그룹은 28일로 시한이 정해진 추가 소명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지난 16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29일까지 MOU를 체결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압력을 가했다. 29일은 MOU를 맺어야 하는 최종 시한이다.

채권단은 29일 오전까지 활발한 협의를 가졌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오후 3시 운영위원회를 연다는 수준으로만 의견이 모아졌다.

이때 매각 관련 권한을 위임 받은 외환은행이 단독으로 움직였다. 계속 시간을 끌다가 현대그룹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외환은행은 오후 1시35분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MOU를 체결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정책금융공사와 우리은행에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현대건설 채권단의 의결권은 외환은행이 25%로 가장 많고 정책금융공사 22.5%, 우리은행 21.4% 등이다.

정책금융공사 유재한 사장은 오후 4시 급하게 가진 기자회견에서 “채권단 내에서 서로 입장 차이가 있었다. 외환은행이 주어진 권한 범위 내에서 행동한 것인지 법률 검토를 하겠다”면서도 “MOU는 이미 체결된 것이고, 단서조항이 붙었기 때문에 그대로 간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일단 현대그룹은 ‘MOU 체결’이라는 관문을 넘었다. 다만 자금조달 내역을 상세하게 증명해야 하는 의무는 그대로 남았다.

MOU에는 ‘조건’이 붙었다. 인수대금이 인출 제한을 받는지, 불법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나티시스은행에 주식·담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어떤 형태의 보증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제출한 입찰 서류에 허위나 위법적 사항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MOU 자체가 무효가 된다.

현대그룹은 당장 다음 달 6일까지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 있는 예금 1조2000억원에 대한 소명을 해야 한다. 그때까지 자료를 내지 않으면 추가로 오는 13일까지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이후에도 말끔하게 의혹이 정리되지 않으면 채권단은 MOU 해지(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박탈)를 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유 사장은 “의결권 기준으로 3대 채권기관(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가운데 2개 기관이 반대하면 MOU 해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MOU에는 5영업일 이내, 추가 5영업일 이내에 증빙자료 내지 않으면 해지한다는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한 뒤 “채권단이 요구하는 추가 해명 등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그룹 강공=MOU 체결이 공식화되자 현대차그룹은 결국 포문을 열었다. ‘현대건설 매각과 관련한 그룹 입장’을 내고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정당한 추가 소명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자금에 관한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이상 현대그룹 컨소시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는 박탈돼야 한다”고 했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그룹은 공정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이의제기 금지조항을 어기며 입찰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법에 5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향후 현대건설 매각과정이 법정다툼으로 갈 개연성도 커졌다.

김찬희 최정욱 조민영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