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사종] ‘야외활동 디자이너’라는 신종 직업
입력 2010-11-29 17:57
“남다른 경험과 인문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을 활용해 국내 관광진흥 이끌어야”
‘올해의 단풍을 또 내년에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년에는 내년의 단풍이 가을 산을 수놓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우리의 생 안에 다시 못 볼 순간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후루룩 일상의 분진을 떨쳐내고 지인들과 경북 안동에 있는 청량산을 다녀왔다. 때는 초겨울로 진입하는 11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청량산의 단풍은 맑은 햇살에 선연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함께 간 일행 모두는 여정의 시작과 끝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청량산의 남다른 절경과 단풍만이 일행의 오감을 만족시켰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인, 공무원, 기업인, 변호사 등 직업을 가진 50대 중반의 좀 까다로울 수도 있는 이 남자들이 흡족해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행지를 찾고 산행로를 개척하고 숙박지를 물색하고 계절 날짜 시간 등 전체 일정을 분배 조정한 일행 중 여행계획을 짰던 ‘야외활동 디자이너’에 대한 만족감이었던 것이다.
기자협회장까지 지낸 한 인터넷언론의 고문인 L씨가 바로 야외활동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L고문은 인터넷매체 안에 국토학교, 울릉도학교, 백두산학교 등을 운영하며 국내외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활발한 야외활동을 해온 만큼 여행 지리에 탁월한 식견을 갖춘 사람이다. 그뿐인가. 청량산행을 조선시대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과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역사문화적 발자취와 함께 묶어 산행의 의미를 뜻있게 만드는 인문적 감각도 지녔다.
안동지역 명물인 간고등어 및 헛제사밥 식당의 예약은 물론이거니와 잠자리 또한 농암고택의 별채를 빌려 고택 숙박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도 선사했다. 등산로는 사전에 정교하게 계산된 코스였고 등하산도 디자인된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귀경시간까지 정확해서 일행 중 저녁 약속을 못 지킨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야외활동 디자이너라는 말을 최초로 만든 L고문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야외활동 디자이너는 현재 울릉도학교의 교장선생인 안종관씨다. 희곡작가 출신의 안씨는 사업을 하다가 돌연 전국을 도는 ‘야외활동’으로 삶의 방식을 바꿨다. 안씨의 수첩과 머릿속에는 전국의 숨겨진 맛집, 남 모르는 볼거리, 비경의 등산로, 숙박지가 빼곡히 담겨 있다. 즐기며 놀던 일이 어느덧 그의 직업이 됐다고 하는데, 그가 디자인한 산행에는 언제나 흔한 맞춤 여행프로그램에 식상한 많은 사람이 몰린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전거, 트레킹, 낚시, 농촌체험 등 여가를 야외에서 즐기는 레저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여가 생활과 관련된 각종 동호인회가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70, 80년대를 지나 정보화 사회의 풍요가 만들어낸 현상 중 눈에 띄는 것은 ‘더 재미있게 살고’ ‘더 행복하게 사는’ 삶에 대한 욕구의 증대일 것이다. 그 변화의 와중에서 새로 등장해 각광받는 직업들도 생겨났다. 이름 하여 소위 ‘야외활동 디자이너’는 요리업계에 등장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같이 변한 사람들의 수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직업이 될 전망이다.
분주한 현대의 도시인들이 안 가본 여행지를 대상으로 나만의 특별한 계획을 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상머리에서 디자인한 야외 활동계획이 현장에서 무참히 망가진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다른 야외활동 경험과 인문 지리 문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갖춘 디자이너의 도움이 있다면 사람들의 개별화된 여행만족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이 신종직업을 등산, 농촌체험관광, 트레킹 등 각 분야별로 특화해 발굴·육성해서 활용해 볼 것을 권해본다. 국내관광 진흥을 위해 공사 사이트에 ‘야외활동 디자이너 상담코너’를 운영해 보는 것도 아이디어다. 상담 비용은 공사 측에서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열심히 놀아본 경험도 직업이 되는 세상이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