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평도 도발] 또 긴급 대피 사이렌… 40여분간 충격·공포 휩싸여
입력 2010-11-28 22:31
한·미 연합훈련 첫날인 28일 오전 11시15분. 적막이 감돌던 연평도에 다시 대피령이 떨어졌다. 연평면사무소에 와 있던 해병대 소속 군인들이 “대피하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면사무소 직원, 취재진, 군인들은 10여m 떨어진 연평초등학교 내 대피소로 황급히 내달렸다. 7분 뒤 연평도 전역에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주민들은 지금 즉시 인근 대피소로 피해주십시오.”
대피소로 피신한 이들은 몸서리를 쳤다. 방금 전까지 면사무소에서 남아 있는 주민을 돕는 방안을 고민하던 여직원은 눈물까지 흘렸다. 대피소 안쪽에 앉아 있던 대한적십자회 인천지부 노진박 총무팀장은 “교대하려고 짐을 싸던 중 대피 방송을 들었다”며 “닷새 동안 있으면서 무섭지 않았는데 오늘 대피령 때문에 위험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확 왔다”고 말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 소속 설동수(33)씨도 “갑자기 피하라고 해 대피소로 무조건 달렸다”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대피소를 통제하던 군인은 “공간이 부족하니 밀착해 앉아 달라”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서성댔다. 대피소 안에서도 좀처럼 안정을 찾기 어려웠다.
대피령은 오전 11시57분에야 해제됐다. 40여분 동안 충격과 공포가 연평도 전역을 마비시켰다. 오전 9시30분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했던 연평도행 여객선도 소연평도로 대피한 뒤 뒤늦게 대연평도 선착장에 입항했다.
여객선을 타고 주민 5명과 우체국 직원 1명이 섬에 다시 들어왔다. 아들이 해병대 연평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성배경(53)씨는 지난 24일 연평도를 나갔다가 4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성씨는 자택 주변의 피폭 현장부터 둘러봤다. 성씨는 “다시 봐도 처참하기 그지없다”며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주민 5명이 추가로 섬을 떠났다. 버티려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주민 고재진(41)씨는 “포격 후 잠시 피했다가 다시 연평도에 들어왔는데 사이렌을 들으니 더 이상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낮 12시쯤 연평도 선착장에는 인천으로 떠나려는 취재진과 주민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군은 취재진의 안전을 위해 철수를 요청했다. 해양경찰청은 구호품 운반차 연평도에 파견했던 경비정을 취재진에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파도가 높아 경비정마저 연평도에 발이 묶였다.
연평도 곳곳에서 처참한 광경도 목격됐다. 생후 2개월 정도 된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이 풀린 다른 개들에게 물려 죽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들이 살려보려 했지만 응급약품이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연평도에는 400마리 가까운 개가 있다. 이 중 많은 개들이 목줄이 풀린 채 섬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백령도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평도 포격 이후 주민 일부가 이미 섬을 떠난 데다 남은 주민 역시 대부분이 집에서 나오지 않아 마을 전체가 휑한 분위기였다. 이용선(57)씨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걱정하며 집에서 TV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씨는 “한·미 연합훈련 때문에 출어가 금지돼 집 밖에 나갈 일이 없다”며 “서울에 있는 자식들한테서 위험하니 올라오라는 전화가 많이 온다. 하지만 섬을 떠나면 생계가 막막해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모텔을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예년 같았으면 이맘때쯤 객실 예약이 꽉 차는데 지금은 예약이 한 건도 없다. 천안함 사태 이후 주민들이 늘 긴장하고 있었는데 연평도 포격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버렸다”고 전했다.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배편을 운영하는 미래해운 관계자는 “인천으로 나오는 표가 매진돼 (여객선뿐만 아니라) 화물선을 타고라도 육지로 나가겠다는 백령도 주민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평도=임성수 최승욱 이용상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