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했는데 객석 웃음… 그 부끄러움이 현재 나를 만든 자양분
입력 2010-11-28 17:44
개그맨에서 ‘영웅’으로 우뚝 선 뮤지컬 배우 정성화
배우 정성화(35)는 뮤지컬 시장에서 대표적인 저평가주였다.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개그맨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정작 걸맞는 평가는 못 받아왔다. 어정쩡한 실력을 갖고 애매한 인기에 취해 어깨에 힘이 들어간 많은 뮤지컬 배우들에 비하면 억울함을 토로할 만하다.
최근 뮤지컬 ‘영웅’ 연습실에서 만난 정성화는 밝은 표정으로 “그런 게 오늘의 나를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2006년 뮤지컬 ‘컨페션’을 할 때였다. 정성화는 청각장애인 작곡가를 연기했다. 귀가 완전히 안 들리는 상황을 연기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지하게 정극 연기를 했는데 웃으니 되게 야속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경험 덕분에 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웃는지, 안 웃는지를 배웠어요. 정극과 코미디 모두 잘 할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정성화는 뮤지컬 쪽에서 웃기는 역할과 진지한 역할 모두가 잘 어울리는 거의 유일한 배우다. 최근까지 ‘스팸어랏’에서 코믹한 아더왕을 맡아 관객을 웃음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제 180도 이미지를 바꿔 ‘영웅’에서 안중근을 그릴 예정이다.
‘영웅’은 정성화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지난해 ‘영웅’ 초연 때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덕분에 그는 올해 더 뮤지컬 어워즈,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남자배우로 주목받게 됐다.
같은 인물을 다시 연기하는 것에 대해 그는 “방심이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저도 모르게 맘 속에 ‘지난해 이만큼 했으니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관객 모두에게 행복과 감동을 주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들면 안 되죠.”
그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표현하는 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지는 영웅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부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은 정성화에게 던져진 가장 큰 숙제다. 정성화는 “너무 인간적으로 가면 못나 보일 수 있고,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그리면 동상처럼 굳어 보인다”면서 “그 사이의 얇은 선을 찾아야하는데 정확한 선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를 부를 때 그 의미를 다 담아서 보여주려고 한다”면서 “올해 또 보시는 분들은 지난해보다 인간적인 부분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성화는 “배우는 빈 좌석을 볼 게 아니라 채워진 좌석을 보고 공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역에 상관없이 언제나 온 힘을 다하는 이유다. 드라마, 영화 등에서 단역을 줘도 마다지 않고 달려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뮤지컬에서 이 위치라고 영화나 드라마도 같은 위치라고 생각한다면 저한테 독입니다. 어디에서라도 열심히 한다면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년 3월 결혼할 예정인 그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넉살좋게 웃었다. ‘영웅’은 12월 4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양준모 신성록이 정성화와 번갈아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다(02-2250-5900).
김준엽 기자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