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별일 없이 산다

입력 2010-11-28 19:09

지난 4월 초 백령도에 갔었다. 인천에서 배로 5시간, 220㎞ 떨어진 그 섬의 북한 땅과의 거리는 17㎞에 불과하다. 1주 전 섬에서 2.7㎞ 떨어진 바다 위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가 났는데도 그곳 주민들은 북한보다 까나리 조업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앞서 1월 말에는 북한이 백령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해역에 400여발의 포를 쏘아대며 사격훈련을 했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백령도 아래 대청도에서 대청해전이 있었다. 연평도에서는 1999년 1차, 2002년 2차 연평해전이 일어났다. 그래도 서해 5도 주민들의 일상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교전이나 포격 소식이 전해지면 섬 바깥에 사는 가족 친지 친구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빨리 나오라고, 거기 있다가 죽으면 어쩌려느냐고 성화들이다. 그때마다 섬 주민들은 “지금까지 별일 없이 살아왔는데 뭘” 그렇게 대꾸했다.

한반도 긴장의 최전선, 서해 5도에 사는 민간인 8000여명이 믿고 살아온 건 “별일 있겠어?” 그 어정쩡한 한 마디였는지 모른다. 외지인들이 보기에 섬 주민들의 평안은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평안은 전후 60여년간 깨지지 않았으므로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연평도 해병대 막사 공사장에서 일하던 김치백(61)씨는 1차 포격 직후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조심해”라고 당부하자 김씨는 “그래, 별일이야 있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바로 2차 폭격이 이어졌고, 김씨는 사망했다.

별일 없이 산다. 그 믿음 위에서 세계 최고의 긴장지대 한반도 이남의 삶이 유지돼 온 것인지 모른다. 그 믿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안정과 번영이 가능했을까 싶다. 남과 북의 충돌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외국인들은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괜찮니? 위험하지 않아? 어떻게 그러고 사니? 그래도 우리는 별일 없이 살아왔다.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남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온 “별일 있겠어”라는 믿음을 파괴했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파괴한 것인지 모른다.

서해 5도의 삶은 이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연평도 주민들은 피난을 떠났고, 섬으로 다시 돌아가길 주저하고 있다. 연평도는 갑자기 무서워서 살 수 없는 섬이 되었다. 연평도의 공포는 아마 서해 5도 전체의 공포일 것이고, 언제 남한 사회 전체로 확산될지 모르는 공포일 것이다. 별일 있겠어. 그 말을 우리가 되찾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걸까.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