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평도 도발] 떠난 주민들 “포격 후 한숨도 못잤다”… 트라우마 우려

입력 2010-11-26 18:25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났으나 연평도를 떠나 인천에서 고단한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충격과 공포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연평도 주민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트라우마’로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신체 손상과 생명의 위협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 나타나는 질환이다.

가천의대 길병원 정신과 조성진 교수는 26일 “인천에 도착해 병원을 찾은 연평도 주민 6명 가운데 5명을 면담했는데 모두 급성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평초등학교 6학년 최덕규(12)군은 “앞으로 천둥소리 같은 것을 들으면 포격 소리가 떠오를 것 같다”면서 “인천에 온 뒤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위에서 쿵쿵 소리만 들려도 무섭다”고 말했다. 노용복(73) 할머니도 “포격 당일 대피소에서 밤을 지샜고 24일 인천으로 나온 뒤에도 지금까지 한숨도 잠을 못자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날 오후 3시10분 연평도에서 다시 포성이 울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현지에 남아 있는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등 동요가 더 커지고 있다. 조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만성화되면 정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불면·불안·우울 증세를 보일 경우에는 초기에 치료받고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포격 당시 느꼈던 감정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연평도 거주민 1361명(주민등록 기준 1756명) 가운데 공무원 59명을 제외한 98%인 1273명이 섬을 떠난 상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친인척의 집에 머물고 있으나 431명은 찜질방과 여관 등 옹진군이 제공한 임시 숙소에서 처량한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재도구가 모두 불에 타면서 빈손으로 섬을 탈출한 주민들은 갈아입을 옷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경인전철 동인천역 인근에서 대학생인 아들의 자취방에 함께 지내고 있다는 유경순(53·연평면 남부리)씨는 “정신없이 나오느라 옷도 없고 돈도 없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이에 인천시는 이날 1인당 100만원의 위로금을 내놨다. 최성일 비상대책위원장 등 주민대표 18명은 주민 위로 차 찜질방을 방문한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켜주고 당장 필요한 생활비와 이주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28일 한·미연합훈련을 앞둔 백령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면서 섬을 떠나려는 주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