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평도 도발] 불안에 떠는 남은 주민들… 쿵! 다시 포성 들리자 대피소에 몰려
입력 2010-11-26 21:42
“대피, 대피.” “빨리, 빨리.”
26일 오후 3시40분쯤. 연평도 남부리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 10여명이 혼비백산하며 대피소로 뛰어 들어갔다. 연평도 인근에서 포성이 울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대피소에 모인 취재진 사이에서 “쐐애애앵” 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다들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가족에게 무사하다는 안부 전화를 걸기도 했다.
주민들도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포성이 들리자마자 일부 주민은 대피소로 피했다. 주민들은 “새마을리 쪽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했다. 강선옥(82·여)씨는 “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대피소에 왔다.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강씨는 남편 이유성(83)씨와 함께 섬에 남았다. 이씨는 남은 주민 중 최고령자다. 이씨는 “6·25도 겪고, 1·4 후퇴도 겪었는데 포격 때문에 섬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했고 가족도 동의했다.
대피소에서 만난 윤주영(37)씨는 “포성 소리가 2번 정도 희미하게 들렸다. 대피령은 들리지 않았지만 불안감에 왔다”고 했다. 포성이 들리자 군 당국도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병력을 배치했다. 15분 뒤 북한 자체 훈련으로 추정된다는 군 당국의 발표가 나왔다. 북의 포격 4일째, 공포와 불안은 주민들이 떠난 연평도에 여전히 남아있다.
대피소를 왔다갔다하는 불안함 속에서 주민 29명은 끝까지 연평도에 남았다. 이들은 생계 때문에, 가족 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이기옥(50·여)씨는 연평도 군부대에 있는 아들 때문에 연평도를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민간인마저 떠나면 아예 대놓고 전쟁을 하려고 할 게 아닙니까? 연평도는 내 부모 형제가 묻혀야 할 땅이에요. 다시 포격을 하면 나라도 M16을 들고 나가서 싸워야지.” 이씨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50대 여성은 “우리마저 가버리면 연평도는 정말 없어질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안광헌(51)씨는 유리창이 모두 깨어진 집 앞 마당에서 배추를 씻고 있었다. 안씨는 “포탄이 또 떨어지든 말든 일단 먹고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했다. 안씨는 가족과 선원 등 9명이 올 겨울을 넘길 500포기의 배추김치를 담그고 있었다. 안씨는 북의 포격이 있던 지난 23일 오후 5시 주민 60여명을 자신의 어선에 태우고 연평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연평도와 백령도 앞바다에 설치해 놓은 투망과 냉동 창고에 보관 중인 수천 마리의 꽃게 때문에 잠이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몸도 몸이지만 저 꽃게들이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이제 초등학생인 딸아이의 미래인데 어떻게 육지에 있겠어요.” 연평도에 돌아와 보니 안씨의 장모가 운영하던 상점은 포격을 맞아 순식간에 잿더미가 돼 있었다.
연평도를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제일 큰 걱정은 28일 예정된 한·미합동훈련이다. 북한이 자칫 또 도발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연평도에 남으려 했으나 주민들의 만류로 지난 25일 섬을 떠나 서울에 머물고 있는 연평교회 송중섭 목사는 “정상적으로 훈련이 잘 끝나서 남북 평화가 정착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은 주민의 불안, 떠난 주민들의 기도, 그렇게 또 연평도의 하루가 저물었다.
연평도=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