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에 던져진 소년 ”… 은희경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입력 2010-11-26 17:39


우리는 이 소설을 읽고 소년의 시대를 다시 한번 통과한다.

어리지도 않지만 철이 든 것도 아닌, 인중에 거뭇거뭇 솜털이 자라기 시작한 어중간한 나이. 소설가 은희경(51)이 이번엔 소년의 몸을 입었다.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는 작가가 소년을 위로하면서 스스로도 위로하는 작품이다.

은씨는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마음속의 소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소설을 쓰고 나서 너무 힘을 들여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이번에 처음 겪어봤다”고 말했다. 15년 전에 냈던 첫 장편 ‘새의 선물’이 레이스 커튼을 걷어내고 세상을 강하게 볼 수 있도록 독을 넣은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살면서 너무 경직된 것을 풀어주고 세상을 유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근육이완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작가로 가진 메이저 세계가 불편했고 그런 반성 때문에 미국에 가서 완전한 소수자로 2년간 생활했어요. 아주 많은 혼란을 겪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8시간을 울었죠. 나도 결국 보수적이고 기성화 된 기득권을 가지고 ‘어른’의 폭력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했어요.”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어떤 성취나 도달, 자기극복이 아니고 ‘나는 나다’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살아오면서 얻은 빚을 갚는다는 기분으로 쓴 소설이에요. 이전의 내가 잘못 생각해 왔던 것을 해체해서 재구성했지요. 생각을 허공에 띄우니 더 유연해 지는 것 같았지요. 살다가 그날그날 경험한 부분들이 소설에 많이 반영되었는데 그런 즉흥성이 소설에 활기를 더 불어넣은 것 같아요.”

소설은 ‘미스터 심드렁’이라고 불리는 연우가 친구 태수와 마리, 채영과 어울리며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이혼한 후 ‘옷 칼럼니스트’로 살아가는 엄마와 그녀의 여덟 살 연하인 애인 재욱을 둘러싼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우는 “싸우는 게 싫다”며 어린 애들에게도 맞고 들어오고, 돈을 뜯기고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엎드려 우는 별 볼일 없는 소년이다. 그런 연우가 태수의 MP3에서 강렬한 힙합 음악을 듣고 전율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지/표정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을 수 있어/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야.”(52쪽)

소설의 제목이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래 ‘소년을 위로해줘’의 가사 일부다. 은씨는 “2005년 여름에 이 소설을 쓰겠다고 했지만 감이 오지 않았는데, 래퍼 키비((kebee)의 ‘소년을 위로해줘’가 결정적 실마리가 됐다”며 “마이너 정서와 소년들의 불안에 공감했고,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보통 소년이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이너’ 정서를 가진 힙합음악의 혁명성은 평범한 소년이 자기 자신의 세계를 인정하는 자기 혁명으로 이어진다.

힙합과 함께 연우에게 또 하나의 무기가 되어주는 것은 달리기다. 평소 마라톤을 즐겨한다는 작가는 “나 역시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이 달렸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달린 나머지 “소설을 쓰는 동안 내 몸이 시속 10㎞가 됐다”는 말에서는 그동안 작가가 얼마나 끈기 있는 주법으로 이 소설에 매달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세계는 낯선 우주고, 우리 모두는 이 낯선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자 위로받아야 될 소년”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면 이 이야기는 17세 소년 연우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은씨는 다음 작품에 대해 “이 소설에서 하지 못했던 ‘성인버전’의 정서가 아쉽게 남아있다”며 “지독한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