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등 세상서 버림받은 者들의 ‘세상 구하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카산드라의 거울’
입력 2010-11-26 17:39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사진)의 장편 ‘카산드라의 거울’(전2권·열린책들)은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일찌감치 관심을 불러 모은 작품이다. 베르베르는 지난해 9월에 가진 방한 기자회견에서 “준비 중인 신작의 남자 주인공은 한국인 김예빈”이라며 “한국 독자를 생각하며 썼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예빈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난민으로 프랑스에 흘러들어간 탈북자 출신이다. 왜 베르베르는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작가의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나는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싶었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은 모두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여주인공 카산드라는 미래를 예언하지만 정작 자신의 과거는 전혀 모르는 17세 소녀다. 그녀의 운명은 아폴론 신으로부터 미래를 보는 능력을 받았지만 정작 아무도 그 예언을 믿어주지 않는 고대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와 닮은꼴이다.
소설 속 카산드라도 재앙을 예견하고 막으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자 고아 기숙학교에서 야간 탈주해 파리의 거대한 쓰레기하치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카산드라는 그곳에서 네 명의 노숙자를 만난다. 왕년의 외인부대원, 전직 에로배우, 아프리카의 흑인 주술사, 그리고 어디에서도 조국을 찾지 못한 탈북자이자 컴퓨터 천재인 김예빈이 그들이다. “난 평양에서 태어났어. 만일 누가 평양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최악의 생각이야. (중략) 이 나라는 주석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가는 세습 왕조로, 미친 독재자 김정일이 쥐고 있어.”(1권 290쪽)
그들 역시 세상이 귀 기울여주지 않는,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카산드라인 셈이다. 카산드라는 이들 네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을 외면한 세상을 구하는 전사로 변해간다.
소설엔 ‘5초 후 사망 확률’을 예언하는 시계가 등장하는데, 이 시계는 카산드라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어 작품의 흐름을 제어한다. “군중 가운데서도 여러 명이 다양한 무기들을 뽑아들고 있다. 카산드라의 손목시계에는 ‘5초 후 사망 확률:71%’가 표시되어 있다. 무조건 빨리 뛰어야 해, 빨리! 집시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조용히 다가온다.”(1권 396쪽)
카산드라와 김예빈의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두 실체. 너는 김이고 나는 카산드라야. 하지만 우리는 같은 것을 의미하지.”(2권 454쪽)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