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밴드 美 진출 다룬 다큐 ‘나는 나비’
입력 2010-11-26 17:35
소속사와 자본의 힘을 등에 업은 소녀시대만 해외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유창한 영어 실력도 막강한 자본력도 없이, 중국도 일본도 아닌 현대 대중음악의 본산 미국으로 진출한 그룹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윤도현밴드(YB). 영화 ‘나는 나비’는 윤도현밴드가 한국 그룹으로선 최초로 미국 록페스티벌인 ‘워프트투어’에 참가해 미국 전역을 떠돈 기록을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다.
데뷔 15년차. 2002년에는 월드컵 응원가를 불러 일약 ‘국민 밴드’로 떠올랐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인기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던 윤도현과 그의 밴드지만 미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가 아닌 조그만 무대에 오르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가운데 ‘담배가게 아가씨’를 불렀다. 노래를 듣고 호응한 관객은 8명. 영화 속에서 윤도현은 “이 정도면 성공이죠”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한 투어의 후반부로 갈수록 밴드는 관록을 보여주며 서서히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한국에서라면 우리도 저 정도는 하는데”라는 궁색한 자존심, 수천 명의 청중을 단숨에 동원하는 스타 록그룹들에 대한 부러운 시선, 찌는 듯한 더위…. 거기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이미 윤도현이 아닐 것이다. 드럼 스틱과 페달이 없어지고, 두고 왔느니 도둑맞았느니 따지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열정과 실력으로 그들의 음악을 미국에 심고 왔다. 흥행의 규모는 보아나 소녀시대와 비교가 되지 않더라도, 밴드를 보고 “당신들이 최고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관객들을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화답하고 싶어진다.
단지 밴드의 미국 공연을 실황 DVD처럼 찍어낸 영화라면 팬이 아닌 관객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터. 윤도현밴드의 음악과 미국의 대자연이 어우러진 영상의 조화는 뜻밖에도 꽤 흥이 난다. 저 ‘딴따라’의 인지도와 인기, 나이를 생각하면 늘 똑같은 틀에 갇혀 지내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까지 덤으로 준다. 윤도현의 재미교포 팬 ‘써니’가 등장해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한 여정을 펼치는데,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설정이었겠으나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드라마와 뮤직비디오 연출에 경험이 많은 정흠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체관람가. 12월 2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