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예찬’ 케이블 방송, 명품 되려면 멀었다
입력 2010-11-25 21:18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들이 상류층 사회를 무분별하게 묘사해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돈 많은 여자가 돈 없는 남자를 무시하고, 명품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과거를 폭로하는 극단적인 장면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는 것. 지난 9월 엠넷 ‘텐트인더시티’에서 한 출연자가 “온 몸에 걸친 것만 4억”이라고 발언해 사회적 물의를 빚었는데도 여전히 케이블 채널에서는 왜곡된 가치관을 담은 장면들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5일 올리브 채널의 ‘악녀일기 시즌7’이 홍콩 재벌 여성 맥신쿠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여과 없이 방송,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8조(건전한 생활기풍)를 위배했다며 ‘주의’ 조치를 내렸다. 홍콩 출신 여성 재벌인 맥신쿠의 호화 저택을 소개하고, 맥신쿠가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고 쇼핑하는 모습, 사치스러운 생일 파티를 집중적으로 보여준 부분이 문제가 됐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악녀일기’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미디TV에서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방영된 ‘현영의 하이힐’은 명품에 대한 여성들의 집착을 전제로 깔고 있다. 고가의 상품을 놓고 여성 출연자들이 벌이는 ‘토크 배틀’이다. 명품 백을 얻기 위해 출연자들은 왕따 당해 속옷 끈이 잘린 이야기, 남자친구와 몰래 문신을 새긴 이야기 등 거북한 개인사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이 프로그램 또한 자극적인 발언과 특정 상품 광고 등의 이유로 방송심의위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 조치를 받았다.
최근에는 재벌의 DNA를 분석해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SBS E!TV가 25일 처음으로 선보인 ‘돈의 교본 사파이어’는 1회부터 ‘청담동 며느리들’의 호화스러운 삶을 조명한다. 제작진은 방송 전 보도자료를 통해 황금빛 인테리어와 고가의 가구들로 꾸며진 거실, 고급 의류로 가득 찬 옷장, 상류층만 즐기는 요트파티 등 재벌의 화려한 삶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케이블 채널에서 유독 부자에 대한 동경을 일으키고 과소비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경식 방송심의위 유료방송심의 팀장은 “케이블 채널은 시청률 경쟁이 심해서 패션,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내용도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흐르게 된다. 또한 비슷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출연자의 씀씀이나 가치관이 더 극단적으로 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장 팀장은 “부자들의 삶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걸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자칫 시청자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제작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