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희망이 있는 곳으로
입력 2010-11-25 18:38
“선생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희망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 이메일로 보내 온 편지 중 일부이다. 스물한 살인 청년인데 수업시간에 진지한 눈빛으로 사물을 응시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다.
존재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한다. 이 물음에 과연 명쾌하게 답을 풀어내는 사람이 있을까. ‘역사 속의 인간’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삶, 생명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인가?’ ‘여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디인가?’
몇 문장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과감히 덮어야 할지 망설였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누가 명쾌하게 알려준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책을 읽는다고 답을 얻기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을 쓴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는 1912년 독일에서 태어난 이론물리학자이자 철학자다. 2007년 4월에 생을 마감한 그는 역사와 철학을 연구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속의 인간’에서 저자는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사유 역사를 배경으로 현대 인간의 삶에서 제기하는 긴급한 실천적 과제들에 대한 대답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누구인가’의 물음으로 시작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로 귀착되는 이 책의 질량은 무겁다. 현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역사 속의 인간은 자연의 역사가 낳은 아이다.” 이러한 사유는 시간, 존재, 진리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핵심으로 자연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정신과학을 지나 플라톤 이래로 수학과 물리학을 핵심으로 하는 철학에 관한 소묘와 종교의 길을 조망하고 있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에 또렷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가장 가까운 답은 ‘희망’이다. 희망은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은 것이다. 현재의 어둠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
책에서도 “희망은 가능한 것에 대한 지각”이라고 했다. 하나의 길, 새로운 상징으로서의 길은 희망의 이정표들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어렴풋이 품는 희망이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역사를 이끈 영웅들은 혁신으로 불가능한 현실에서 희망을 찾았다.
역사와 철학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역사 속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떠한 예언도 주장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책의 종착점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희망이 있는 곳으로”라는 힌트를 준다.
‘복 되도다, 그 시대는. 창공의 별이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는 시대는’이라고 시작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문장을 읽고 가슴 설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내 삶에 오롯이 점철되어 있는 젊은 날의 문장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실은 냉혹하고 청춘은 뜨겁다. 때문에 희망을 가득 품어야 청춘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질문을 던져 온 스물한 살 청년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