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軍門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입력 2010-11-25 23:47
중국 광저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너는 긴장의 경계근무를 섰을 것이다. 그들이 군 면제의 과실에 기뻐할 동안 너는 현역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느낄 것이다. 추신수가 언론 인터뷰에서 필살기를 이야기했다. “군대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고요….” 박주영은 그러지 못해 우울하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군대는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복무기간 2년은 청춘을 붙잡는 유예의 시간이다. 펄펄 뛰는 젊음을 제복 속에 가두어 놓는다. 거의 공짜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군대는 자유와 풍요 대신 규율과 궁핍을 요구한다. 특수 목적을 위해 조직된 집단이기에 많은 불합리가 존재한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기피하고 특례의 구멍을 찾아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간다.
작년 초, 입대를 앞둔 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특례자를 보면 기분이 어떠냐고. 아둔한 물음이었다. 너는 싱긋 대답했다. “난 박지성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게 좋은데….” 기성세대가 고루한 사고에 젖어있는 동안 너희는 쿨하게 접경의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젊음의 몫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너를 보고 나도 덩달아 쿨해졌다.
군인의 정체성은 긍지와 명예
연평도에서 희생당한 서정우 하사의 나이가 너와 같은 뱀띠더구나.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 나가던 날, 어이없는 포격에 산화했다. ‘무적 해병’도 적의 기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문광욱 일병은 “친구야 군대오지 마라. 한반도 평화는 내가 지킨다”고 적었다. 앞의 문장은 군대생활의 고통을, 뒤의 글은 그런 고통 속에 싹튼 군인의 긍지였다.
나는 문 일병 글이 보편적 정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약점과, 인간이기에 가능한 헌신이 교차하는 지점. 거기에 군인의 길이 있어 보인다. 네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내가 던진 질문도 생각나는구나. “사단본부는 좀 나은가?” “군인은 자신의 근무처가 최전방이죠.” 이어 말했다. “전쟁 나면 무조건 이겨야 해요. 현대전은 전후방이 없고 민과 군이 따로 없고, 혼자만 살 수 없는 겁니다.” 너의 말은 준비된 답변이거나, 정훈교육의 결과는 아니었다. 스스로 터득한 군인의 정체성이 분명했다.
다만 미안한 것은 사랑의 부족이다. 국민들은 나라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민하지 않으니 지키는 일에도 무심하다. 군대의 존재 이유를 모르니 군인을 호통치는 데 익숙하다. 오랜 군사독재의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너무나 이기적이다. 적의 공격을 보고도 결연한 의지를 다듬기보다 두려움과 불안에 떤다. 슬픈 초상이다.
연평도도 잊고 살았다. 일기예보 시간에나 가끔 언급되던 땅. 그 북방의 섬에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사람이 죽어나가자 국토임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젊은이에게 맥아더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맥가이버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얼마나 몽매하면 60년 전에 치른 전쟁의 교훈을 잊을까.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의 국방환경은 나쁘다. 적은 난폭하고 이웃은 고약하다. 그 어려움 속에 군인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 나라의 무엇을 지키느냐고? 자유와 번영과 평화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평화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에서 나온다. 전쟁의 끝은 죽은 자만이 볼 수 있다고 하듯 전쟁은 인간과 악연을 이어간다.
이제 관등성명을 부른다. 육군 제35사단 손민제 병장. 군인은 외로움 속에 스스로 명예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전역 명령이 날 때까지 소임에 충실해야 나라와 자신에게 떳떳하다. 오늘따라 “충성!” 구령이 듣고 싶구나. 크게 지르는 소리가 너희 내면을 휘돌아 국민들 가슴에 조국수호의 의지로 닿기 바란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