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인생을 배우는 학교
입력 2010-11-25 18:47
학창시절에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고 실패할까봐 두려웠던 기억도 있다. 지루하기도 했다. 독일의 학교제도에 대해선 늘 불평하는 입장이었다.
매년 11월 수능시험이 다가오면 한국인 친구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겪었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독서실, 학원, 수면부족, 체벌 이야기가 꼭 나온다. 그러고 보면 독일에서 내가 받은 교육은 전혀 나쁜 교육이 아니었다. 매일 7∼8시간의 수면이 보장됐고 오후 시간은 대부분 자유롭게 지냈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10학년(한국의 고1) 때 몇 달간 미디어 평가에 대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때 신문도 정치적 경향을 띠며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위주의 기사와 논설위원이 주장을 피력하는 사설의 차이점도 배웠다. 숙제는 배운 것을 토대로 텔레비전 뉴스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뉴스가 어떤 내용을 보도하는가에 따라 진지한 성향의 방송인지, 재미 위주의 방송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그 수업은 지금쯤 아마 인터넷으로 학습 범위를 넓혔을 것이다.
열일곱 살 방학 때는 사회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나는 카티야라는 친구와 함께 양로원에서 일했다. 어떤 아이들은 병원이나 유치원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다. 아침 당번이었던 우리는 어둑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서서 대여섯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씻긴 뒤 옷 입는 것을 도와주고, 틀니와 보청기를 끼워드린 뒤 식탁까지 모시고 갔다.
아침 식사 후에는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나가거나 몸이 성한 분들을 체조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렸다. 또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아마도 그때 우리는 방학을 그렇게 보낼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로원 실습은 학교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됐다. ‘늙고 병들어도 인간은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다’는 책 속 글귀를 읽는 대신 이 자명한 사회적 사실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과목에 상관없이 벌인 수많은 토론도 기억에 남는다. 영어시간에는 사형제도에 관해서, 사회시간에는 성소수자의 결혼에 관해서, 생물시간에는 육식에 관해서 찬반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때로 사람을 녹초로 만들고, 학생 사이 혹은 학생과 교사 사이 다툼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그러나 의견이 벌어졌을 때조차,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할 때 학교란 각 과목에 대한 지식, 문제해결 능력, 사회적 능력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나라마다 학교가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가진 것을 보면 이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완벽한 조화를 찾아낸 나라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학교제도의 수준이 시험성적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가, 아니면 인생을 위한 공부를 하는가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