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승만 (21) “천국과도 같구나” 여겼던 가정에서 아내를
입력 2010-11-25 18:28
1955년 가을, 단풍이 곱게 든 어느 날 나는 대전 이장춘 장로님 댁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불쑥 찾아가는 셈인데 실례가 안 될까요?” 피란 내려온 이후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랐던 김성환 집사님은 내 물음에 “오늘은 네가 꼭 가야 하는 날이다”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씀만 하셨다.
이 장로님 가족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모님이신 김찬길 집사님은 “고생이 많지”라며 며칠 묵다 가라고 권하셨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으나 밝고 평화로운 가정 분위기에 취해 3일이나 머물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 댁 장녀, 당시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혜선이 치는 피아노 곡조에 맞춰 다 함께 찬양을 했다.
‘천국과도 같구나! 나도 언젠가 꼭 이런 가정을 이루고 싶다.’ 그때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꿈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혜선도 평양에서부터 안면이 있었고, 은근히 마음에 둔 적도 있었지만 당시는 내 처지가 하도 어려워서인지 멀게만 생각됐다.
그런데 그날 이후 김성환 집사님은 나에게 계속해서 혜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그 댁 집사님과 얘기를 해 봤는데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혜선에게 연락해서 데이트도 하고 그래.”
자꾸 말을 듣다보니 나 자신도 혜선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만 용기를 내기까지는 몇 달이 더 걸렸다. 몇 달 후인 56년 1월, 유학을 1주일 앞두고서야 혜선의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식사 대접을 받은 후 혜선과 둘이서만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해 온 말을 시작했다. “내 인생의 세 가지 중요한 결심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며 먼저 종이 위에 십자가를 그렸다. “나는 일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왼쪽에 화살을 그렸다. “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칼을 그렸다. “나는 사회의 정의와 옳은 일을 위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혜선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혜선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치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둘이 생각하는 삶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저는 그 두 삶이 하나로 묶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저와 결혼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손을 내밀었다. 곧 혜선의 두 손이 다가와 네 손과 하나로 묶어졌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이 약속을 나눈 1주일 후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5년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은 깊어졌다. 내가 루이빌에서 신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혜선도 의과대학을 마치고 의사고시에 합격했다.
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60년 7월 22일, 드디어 혜선이 미국에 도착했다. 광활한 사막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걸어오다 그 한가운데서 만난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혜선의 손을 잡자 이제 더 이상 사막 한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틀 후는 목사 안수식이었다. 혜선은 내 옆에 서서 함께 목회 서약을 했다. “혜선양, 승만과 함께 하나님의 목회 사역에 동참하시겠습니까?” 혜선은 “예!”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로부터 6일 후 결혼식이 열렸다. 내 나이 서른, 혜선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올해가 결혼 50주년이 되는 해다. 오늘까지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