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DJ?… “정곡 찌르는 독설, 청취자들이 웃어줘요”
입력 2010-11-25 18:08
‘라디오 지옥’ 펴낸 윤성현 KBS PD
‘까칠함의 마력’은 놀랍다. 아부 따위는 하지 않고 냉랭하게 쏘아붙이는데도 사람들은 달아나기는커녕 더 달라붙는다. 못 믿겠으면 KBS 2FM(89.1Mhz) ‘유희열의 라디오천국’과 ‘심야식당’을 연출하는 윤성현(33·사진) KBS PD를 보라. 그는 ‘심야식당’의 DJ이기도 한데, 그의 독설 수위가 올라갈수록 더 많은 청취자들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사연들을 읽어달라고 아우성친다.
지난 18일 윤 PD가 에세이집 ‘라디오 지옥’(바다봄)을 펴냈다. ‘신청곡 안 틀어드립니다’라는 부제에서부터 그의 삐딱한 성격이 엿보인다. 24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삐딱한 DJ’ 윤성현을 만났다.
책을 낸 계기를 묻는 첫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부터 거침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책 한권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큰 사상이 있거나 재미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이 요즘은 개나 소나 책을 쓰는 세상이다 보니 출판사 몇 군데서 제안이 왔어요. 항상 품어온 소망인 책을 내주겠다고 나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가 DJ를 하게 된 계기는 2007년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때 사이버 캐릭터 ‘윌슨’을 만들면서다. 눈 코 입이 그려진 배구공 ‘윌슨’을 빌려 그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었고, 참신한 이 기획이 호평을 받아 ‘윌슨’은 ‘올댓차트’라는 심야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발탁됐다. 이처럼 윤 PD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정작 우리에게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그는 “방송에서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사적인 얘기는 피해왔다. 이 책은 예전부터 자주 받아온 질문들에 대한 답변 격이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그가 라디오 PD가 된 계기, 좋아하는 음식, 해외 출장기 등이 담겨있다. ‘대한민국에서 라디오 PD로 살아가는 30대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는 제격인 셈.
그의 존재는 방송계에서 독보적이다. 미모의 여자 아나운서들이 “다 잘 될 거에요”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냉소로 일관하는 진행스타일은 단연 눈에 띈다. 그는 “객관적으로 봐도 외모나 성격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데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청취자의 고민에 “그건 (자신에 대한 판단이)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일갈한다. 정곡을 찌르는 답변에 청취자들은 웃으며 고민을 떨쳐버리게 된다.
“아무리 복잡하고 심각한 사연이어도 단답형으로 얘기하는 게 포인트예요. 가볍게 받아쳐줄 때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웃자고 한 답변에 다들 공감하면서 한번 웃고 지나가는 거죠.”
그가 ‘심야식당’에서 PD, 작가, DJ 이렇게 1인 3역을 도맡은 점도 특기할 만하다. 라디오 PD로서는 이례적으로 진행도 맡은 그는 “예전에는 DJ에게 ‘본래 뉘앙스를 살려서 읽지 못하냐’ ‘문장의 느낌이 다르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지금은 역지사지하게 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할 때 좀더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자신의 진행을 잡아줄 PD가 없다는 점은 아쉽지 않을까. 윤 PD는 “견제세력은 청취자들”이라면서 “우리 청취자들은 호불호가 분명해 싫어하는 부분이 있으면 분명하게 지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