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 김승유 회장 ‘은밀한 역공’의 힘
입력 2010-11-24 21:23
2006년 3월 서울 여의도 하나금융지주 본사(현재 하나대투증권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했다. 불운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어 진행된 LG카드(현재 신한카드) 인수에도 고배를 마셨다. 외환은행 건은 국민은행에, LG카드 건은 신한금융지주에 근소한 가격차로 밀렸다.
안팎에선 정보력에 뒤졌다느니, 김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느니 하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절치부심하던 김 회장은 4년 만에 대형 기업 인수·합병(M&A) 포문을 열었다. 하나금융 이사회가 외환은행 인수 안건을 통과시키자마자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당당히 몸을 실었다. 현지시간으로 25일 오전 11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과 만나 외환은행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다.
하나금융이 사들이는 주식은 3억2904만2672주(지분율 51.02%)로 금액은 4조6500억∼4조7500억원. 김 회장은 “가격은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만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계약 체결 이후 론스트와 동시 발표한다”고 말했다.
◇김승유의 ‘승부수’ 통했다=그동안 하나금융은 성장이 정체됐다. 주력 계열사인 하나은행은 자산 순위가 중소기업은행에도 밀린 5위권으로 떨어졌다. ‘먹지 못하면 먹힌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나금융은 돌파구로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시장이나 금융당국은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민영화에 적극 뛰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때 김 회장은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자산 332조2000억원의 우리금융을 먹고 ‘배탈’이 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반대하던 외국계 주주가 이탈한 것은 결정타였다.
김 회장은 은밀하게 론스타와 접촉하라고 실무진에게 지시했다. 실무진은 지난달 말부터 동남아시아 등에서 론스타와 만났다. 협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외신을 통해 알려졌을 때는 이미 성사단계였다. 외환은행 실사를 했던 하나금융 담당자들이 실사 직전까지 몰랐을 정도였다.
◇꼬마은행에서 금융공룡으로=하나금융의 모태는 1971년 자본금 6억5000만원으로 시작한 한국투자금융이라는 단자회사다. 단기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대차(貸借)하거나 중개해주는 회사다. 한국투자금융은 91년 하나은행으로 간판을 바꿨다. 한국투자금융 창립 멤버이기도 했던 김 회장은 당시 하나은행 전무였다.
외환위기는 하나은행에 기회였다. 98년 충청은행, 99년 보람은행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다. 2002년에는 업계 5위였던 서울은행마저 삼켰다. 2005년 대한투자증권(현재 하나대투증권)을 인수하면서 은행·증권·보험이라는 삼각체제를 구축했다. 모든 M&A 뒤에는 김 회장이 있었고, 시장은 그를 ‘타고난 승부사’로 평가했다.
내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로 하나금융을 금융권 3위까지 끌어올리게 됐다. 꼬마은행으로 불리던 하나은행이 자산 316조원이 넘는 대형 금융그룹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하나금융은 인수 뒤에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과 합병하지 않을 계획이다. 소매금융이 강한 하나은행, 기업금융과 외국환업무에 강한 외환은행이라는 ‘2은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