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반대 운동 1년… 산부인과 의사 김종석 원장 “‘너만 깨끗하냐’ 소리 많이 들었죠”
입력 2010-11-24 17:45
갓 태어난 남자아이. 엄마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기도 전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했다. 어머니가 임신 중 연탄가스를 마셔 힘겹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수차례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호흡기질환으로 자주 병원신세를 졌다. “나중에 커서 꼭 소아과 의사가 돼 나 같은 아이를 고쳐줘야지.” 아이는 어린 마음에 꿈을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아이는 훌쩍 자라나 의과대학 인턴이 됐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돌고 있었다. 날 때부터 유독 몸이 좋지 않았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의 아이인 양 신경을 썼다. 며칠간 출장을 다녀온 뒤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병실에 갔다. 그런데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 어린 것이 야속하게도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치료한 아이가 죽는 것을 겪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의 죽음은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는 그의 오랜 꿈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결국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돕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로 꿈을 바꿨다.
달콤한 유혹을 이기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에 위치한 연세글로리산부인과 김종석(42) 원장. 22일 오후 병원을 방문해 그를 만났다. 병원 입구엔 “소중한 생명을 위해 낙태 시술을 하지 맙시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는 올해 초 낙태 반대 운동에 나섰던 프로라이프의사회의 간사다. 그는 이날 만남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낙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인턴 시절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기를 직접 받아 들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주일학교 시절부터 성경말씀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던 그에게 이때의 경험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수정이 된 그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됩니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생명을 해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레지던트 시절 그는 급기야 낙태 실습을 하던 수술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낙태 시술은 달콤한 유혹이다.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다. “낙태 시술을 하지 않으면 산부인과 의사는 망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김 원장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파주에 병원을 개업한 뒤 3년 동안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래도 신념대로 열심히 하다보니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채워주셨고 병원이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따가운 시선, 굳건한 소신
굳건한 소신.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예전 몸담았던 산부인과에서는 낙태 수술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근무했다. ‘자기만 깨끗하다는 거야’라며 동료들은 수군댔다. 한때 친했던 동료의 말에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 와 신념을 굽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 초 낙태 문제가 공론화됐을 때 역시 그에 대한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동료 의사들, 여성 인권단체 등의 항의전화가 빗발쳤죠. 최대한 뜻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그래도 한쪽에서 낙태반대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하는 분들도 많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그는 자신의 병원에 낙태를 하러 왔다가 생각을 바꾼 뒤 행복을 찾은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줬다.
요즘은 산전 아기의 몸에 결함이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 한 부부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김 원장을 찾았다. 초음파 사진을 통해 아기가 구순구개열(입술이나 입천장을 만드는 조직이 떨어져 생기는 갈림증) 증상이 있음을 확인했다. 부부는 이후에도 수차례 김 원장을 찾아와 “저희를 위해서도, 아기를 위해서도 낙태가 현명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초음파 사진 한 장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출산을 하십시오”라고 했다. 그의 강력한 권유에 부부는 출산을 결정했다. 이후 수술을 통해 구순구개열을 치료했다. 부부는 뛸 듯이 기뻐했다. “선생님 덕분에 아기가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너무나 행복해요.” 부부는 요즘도 가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한다.
정부, 처벌의지 있나 없나
낙태문제가 공론화 된 지 1년 가까이 된 지금의 상황은 어떤지 물었다. “처음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80%의 병원이 낙태 수술을 중단했어요.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다시 예전과 같이 돌아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고발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의 처벌의지가 불명확하다 보니 낙태 시술은 다시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본보 목요일에 만나는 ‘이웃’ 지난 호(11월 18일자 33면)에 소개된 ‘열여덟 미혼모 은혜의 수능 도전기’를 접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매우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너무나 올바른 판단입니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중고생이 임신을 하면 퇴학당합니다. 불합리하죠. 단기적으로 미혼모가 다니는 대안학교가 많이 생겨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고생 미혼모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김 원장은 신앙인의 역할도 강조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낙태 반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대형교회에 낙태반대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프로라이프의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 중 신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낙태 반대에 대한 교회의 소극적인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힘을 모아 함께 낙태반대운동에 나서기를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듯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서영희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