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도발] 육지로 탈출한 주민들 “또 포격할까봐 한숨도 못자”

입력 2010-11-24 21:49


24일 섬을 빠져나온 연평도 주민들은 가족끼리 꼭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부두를 빠져나가는 내내 엄마 손을 놓지 않았다. 노인들은 자식의 부축을 받아 걸었다.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이들이 만 하루 동안 겪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주민들은 육지에 도착하자 일단 안도했다. 윤종균(58)씨는 “간밤에도 북한이 포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 한숨도 못 잤다. 이렇게 무사히 나와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배에서 내렸다. 한동안 섬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각오한 표정이었다.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과 친지에게 안부를 전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민 사이에서 “이거 난민이 따로 없네” “언제 돌아가지”하는 말들이 오갔다.

남부리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박훈식(55)씨는 폭격 당시와 전날 밤의 상황을 묻자 몸서리를 쳤다. 그는 “방공호에서도 흔들림이 계속돼 무서웠다. 전선과 유리파편이 많아 골목길 통행이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연평중 3학년 신은휘(16)양은 “컵라면을 끓여먹을 때 대피소에 물이 없어 대피소 앞집에 가서 물을 끓여 왔다”고 했다. 신양은 수업을 받던 중 학교 건물 옆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몇몇 주민의 입에서는 “이제 연평도를 떠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한 주민은 “평생을 연평도에 살면서 전 재산을 쏟아 부었지만 전 재산을 버려도, 노숙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연평도는 못 들어가겠다”고 했다.

앞으로 생계를 꾸려갈 일도 걱정이다. 다른 주민은 “폭격도 무섭지만 당장 조업을 못해 수입이 안 생길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11월은 가을 꽃게잡이철 막바지라 전체 피해 규모가 크지 않겠지만 개별 어민 생활에는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인천 옹진군 관계자는 “당분간은 조업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업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무서워서 바다로 나갈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해군과 해경은 이날 세 차례 경비정과 공중부양정을 띄워 주민을 이송했다. 주민들은 오후 1시20분과 1시40분, 오후 3시에 차례로 인천 연안동 해경 함정부두와 인천 해역방어사령부에 도착했다. 모두 525명이 연평도를 빠져나왔다. 주민들은 섬에 남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옹진군과 해군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와 친척집 등으로 향했다. 버스는 주민들을 관교동 시외버스터미널과 국철 동인천역, 인천 국제여객터미널 등지에 내려줬다. 일부 주민은 미리 마중 나온 친지의 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주민 180여명은 옹진군이 마련한 연수동 찜질방에서 밤을 지냈다. 이들은 TV에서 불에 탄 섬 모습이 나오자 “저기 ○○ 집인데…”하면서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찜질방에서 제공한 옷으로 갈아입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이었다.

오후 옹진군청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에서는 찜질방을 숙소로 정한 일을 두고 항의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지권(53)씨는 “외상이 없어도 아픈 사람이 많다. 검진도 없이 찜질방으로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만 하루가 지났는데 중앙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다”고 성토했다.

옹진군은 숙소는 현재로서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주민들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연평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27명 가운데 김영세 교장 등 3명을 제외한 24명도 해군 경비정 등을 타고 섬을 빠져나왔다. 연평도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고 통합학교가 1개씩 있다. 인천 남부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은 학교가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교육청에서 대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천=권기석 임성수 최승욱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