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45년 걸려 통권 150호 돌파, 백낙청 편집인의 감회… “집단지성이 작용하는 잡지로 진화 중”
입력 2010-11-24 18:52
1966년 창간된 계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2010년 겨울호로 통권 150호를 돌파했다. ‘돌파’라는 단어가 각별히 다가온다. 1980년대 군사독재 체제에서 강제 폐간당하는 등의 탄압을 꿰뚫고 지금에 이른 저항의 몸짓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통상 37년6개월이면 달성될 150호가 45년이나 걸렸다는 건 이 잡지의 역사와 성격을 대변한다. “개인적인 주도성이 아주 두드러진 창비가 이제는 집단지성이 작용하는 잡지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간 때 품었던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4일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남다른 감회를 털어놓았다. “출판사 문마저 닫아야 했던 1980년 중반 당시 문공부와 오랜 협상 끝에 86년 ‘비평’이란 단어를 떼고 그냥 창비사란 이름을 내거는 조건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가 88년에 가서야 이름을 되찾았지요.”
요즘 창비의 발행 부수는 평균 1만2000부. 이 가운데 9000부는 정기독자로 자리 잡았고 해외 지식인들로부터도 부러움을 사는 잡지로 거듭나고 있다. 독보적인 발행부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운영 과정에서의 미진한 면이나 창비 담론의 방향타에 대한 반성이 없을 리 없다.
“70∼80년대에는 민족문학진영과 다른 진영의 갈등이 컸지요. 문학작품은 진영 논의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민족문학진영 바깥의 작가를 발굴하는 데 소홀했던 게 아쉽습니다. 90년대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줏대를 못 세운다는 비판을 받았고, 일정 부분 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시민방송 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으면서 비평가로서 제 개인적으로도 문학 쪽에 소홀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운동성 회복’이라는 창비의 문학관을 재정립하고 비문학 부문과의 괴리를 줄이면서 통합적인 창비담론을 만드는 데 최근 4∼5년간 주력해온 게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 ‘분단체제론’ 주창자이기도한 그에게 남북 관계를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로 몰고 간 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했다. “이건 분쟁지대나 비무장지대에서의 포격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민간인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연평도에 대해 쐈다는 건 절대 용인할 수 없지요. 하지만 길게 보면 이런 일은 미연에 방지했어야지요. 대통령의 기본 임무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인데 한반도 평화관리를 잘 못해서 우리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더 안정되게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좀 더 거시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