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북한을 응징하는 법
입력 2010-11-24 17:54
있어서는 안 될 일 두 가지가 23일 벌어졌다. 북한이 포탄 170여발로 서해 연평도를 공격했다.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하고 20명 가까이 중경상을 입었다. 내 휴대전화에도 “전쟁 나면 어떡해…” 하는 아내의 문자가 찍혔다.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이 나라 대통령의 목소리가 잘못 전달됐다. 청와대는 오후 3시50분쯤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를 공개했다가 2시간여 만에 “실무자가 잘못 전한 것”이라며 정정했다. 새롭게 전해진 대통령의 말은 “몇 배로 응징” “막대한 응징” “군은 행동으로 보이라” “상황에 따라 북한 미사일 기지를 타격하라” 등이었다. ‘확전 방지’와 ‘막대한 응징’은 정반대 얘기다.
이런 상황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청와대 지하벙커와 합동참모본부 방문 자리에서, 긴급 안보장관회의와 합참 화상회의에서 대통령은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중엔 국민의 목숨을 또다시 앗아간 무력 도발에 대한 분노도, 더 많은 국민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확전에 대한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군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두 가지를 모두 고민해야 한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둬 국민에게 전하느냐는 판단의 몫이고, 대통령의 말이 정정된 것은 그 판단의 과정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늘 그랬다. 안보 현실을 고려해 냉정한 이성을 갖고 대응하면 우리가 너무 무기력해 보이는 짓을 저질러 왔다. 그렇다고 본때를 보여주자, 결단을 내리려면 우리에게도 돌아올 피해가 너무 커서 망설여지곤 한다. ‘냉정’과 ‘결단’ 사이를 오가다 나온 청와대 브리핑이 ‘확전 방지’와 ‘막대한 응징’이다. 대통령의 두 고민을 모두 담아내려면, 6·25전쟁 이후 남한 땅이 일궈낸 성과가 다치지 않게 하면서 북한이 더 이상 무력 도발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때려주는 ‘확전 없는 응징’을 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연평도가 공격당한 다음날 아침 수많은 매체가 사설과 논평과 칼럼에서 ‘응징’을 얘기했지만, 방법을 거론한 목소리는 드물다. 안보 전문가 두 명에게 ‘북한 응징하는 법’을 물었다. 두 사람의 답변은 다르면서도 같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을 무력으로 응징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연평도 공격이 시작된 북한 해안포 기지, 더 나아가 이 공격을 주도했다고 보이는 북한군 거점을 정밀 타격할 능력이 우리 군에 있다. 단호한 대처를 주문할 시점이다. 다만 이런 응징은 확전을 감내할 각오가 돼 있어야 가능하다. 선택의 문제다. 우리가 응징을 선택하면 이번엔 북한이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전면전을 불사하고 다시 보복하느냐, 확전을 피하느냐. 확전 방지와 무력 응징은 공존할 수 없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을 무력으로 응징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무력 사용은 북한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고, 단기적 대응에 불과하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외교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해 중국이 북한의 나쁜 행동을 제지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은 응징보다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다. 대결보다 교류와 협력이 효과적이다. 확전을 피하면서 군사적으로 응징할 방법? 그런 건 없다.”
적대시하는 두 세력이 무력 충돌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서로 친해지거나, 서로 무서워하거나. 친해지려면 인내가 필요하고, 무서워하게 만들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감수한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은 북한과 친해지려 참아왔고, 이 정부는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다며 용기를 내보려는 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두려움의 균형’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선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잃을 게 많은 쪽이 불리한 법이다.
태원준 특집기획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