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紅春

입력 2010-11-24 17:58

“인생을 마무리 지으면서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 2001년 1월 김종필(JP)씨 말이다. 75세(당시)의 JP가 2002년 16대 대선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며 사람들은 그의 과욕을 나무랐다. 하지만 그는 대선출마는커녕 2004년 총선에서 자민련이 참패하자마자 정계를 떠났다.

정치인의 속내는 알 길이 없지만 나이 여든의 산수(傘壽)가 흔한 요즘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마음다짐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 일본의 지인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예순에 충북대 대학원에 유학해 한국도자기를 연구했던 야마다 사다오(山田貞夫)씨다.

그는 인생엔 봄이 두 번 있다고 했다. 젊음의 활력이 넘치는 청춘이란 봄, 그리고 노년의 생을 붉게 불사르는 봄이란다. 이름하여 홍춘(紅春).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JP의 ‘서쪽 하늘’ 운운하는 말이 떠올랐고, 그것을 너무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었겠다는 생각도 따라 들었다.

야마다씨의 홍춘은 십수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려박물관(본란 2005년 4월 1일자에 소개)에서 봉사해 왔고 현재는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가 주도하여 고려박물관은 11월 초 ‘한국의 자기’란 책을 일본어로 번역, 출판했다.

책의 저자는 강경숙. 야마다씨가 충북대에서 유학하던 때의 지도교수다. 번역은 물론 야마다씨. 번역본 머리말에 야마다씨는 “이 책의 번역·출판은 늙은 학생을 지도해 준 데 대한 보답이며 감사의 징표”라고 썼다. 노(老)제자, 그것도 이국에서 온 이를 지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다.

흔히 교육은 후학에 대한 투자이고 그 성과는 후학들의 학업성취 및 사회기여 여부로 평가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배움 그 자체가 보람이고 삶을 넉넉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교육의 성과를 굳이 보이는 것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야마다씨의 예처럼.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 건장한 노인들이 넘친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키워온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사장시키는 것은 사회적 낭비다. 그런데 홍춘의 길은 배우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다.

홍춘은 늘 복지의 수혜자, 사회적 약자로만 각인된 노인들에 대한 편견을 질타한다. 고령사회를 맞는 지혜로서 홍춘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제도적 대응 등을 곰곰 따져봐야 할 때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