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170 대 80’으로는 안 된다
입력 2010-11-24 15:00
“비례성의 원칙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문책할 부분이 있다면 해야 한다”
어제는 편집국 회의를 도시락을 먹으면서 했다. 편집국 회의는 편집국 내 모든 부장과 부국장들이 편집국장과 모여서 그날 신문의 편집 방향과 아이템을 정하는 자리다. 식사하면서 편집국 회의를 한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북한이 6·25전쟁 뒤 처음으로 우리 민간인 동네에 무차별 포격을 한 것 만큼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연평도가 불바다가 된 뒤라 챙길 것도 많았다. 우리 군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170 대 80’ 북측 도발과 우리 측 대응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북한이 미그 전투기까지 띄워가며 우리 영토를 유린할 때 우리 군은 북측이 자행한 포격의 절반도 안 되는 대응 사격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포격을 당한 지 13분이나 지난 뒤였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지난 8월 국회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교전수칙을 개정해 일선 부대에 내려 보냈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 영토를 공격하면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2∼3배의 화력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제는 엉뚱하게도 6·25 때의 흥남철수가 떠올랐다. 미어터질 듯한 어선에 황급히 몸을 싣고 혼비백산한 뒤끝을 겨우 추스린 연평도 주민들. 그 규모에 있어서는 흥남철수에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구사일생으로 배 하나에 몸을 의탁한 그들에게는 흥남철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마침내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한 그들이야말로 다름 아닌 피란 나온 양민들이었다. TV로 그들의 모습을 보자 걷잡을 수 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예, 저 광욱이 친구맞고요. 그 메시지도 (광욱이가 쓴 것) 맞아요” 북한의 무차별 도발에 순국한 문광욱 해병대 일병의 친구 한솔군은 말끝을 잇지 못했다. “한솔아, 군대 오지 마. 한반도의 평화는 내가 지킨다.” 문 일병이 한솔군의 미니 홈피에 남긴 글이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다. 어제 날짜 본보에 실린 사연이다. 문 일병의 죽음을 애도하는 네티즌들은 누가 달래 줄 것인가.
멀쩡한 군함을 캄캄한 밤중에 격침시키더니 이젠 아예 백주 대낮에 대놓고 민가에 포격을 가했다. 이쯤 되니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거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른쪽 뺨 왼쪽 뺨 연이어 맞고만 있으니 성인이 아닌 이상 누가 그냥 지나가도 괜찮다고 하겠는가. 나는 애정을 갖고 군을 대해왔다. 취재 현장을 뛸 때는 국방부도 출입했다. 천안함 침몰 이후 군 책임론이 제기됐을 땐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 둘은 지금 병역 의무를 이행 중이다. 요새 군대는 참 좋다. 훈련 기간에도 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중대장에게 편지도 띄울 수 있다. “젊은 사병들이 나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군인은 모름지기 군인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지휘관들은 사고 날까봐 강하게 훈련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집에 전화 걸어 ‘엄마, 전쟁나면 나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묻는 사병이 부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아들이 훈련 중일 때 중대장에게 이런 편지를 올렸더니 답글은 이랬다. “군대에 애정을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 생각이 모두 똑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허점 투성이 군 장비, 끊이지 않는 사고와 비리…. 이번에도 우리 군의 K-9 자주포 2문은 고장났고 북한 해안포에서 발사된 포탄을 관측하는 대포병 레이더는 작동이 안됐다. 맨 몸으로 연평도를 빠져 나온 사람들은,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과연 우리 군이 나라를 굳건히 지켜 줄 것이라고 믿겠는가.
북한의 ‘막가파식 수법’은 지금까지 상당부분 먹혀들었다. 국제 사회도 북한이라는 불량 국가 앞에서 쩔쩔 매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길들이기는 일차적으로 우리 손에 달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막가파식 억지가 계속 통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렇기에 ‘170 대 80’은 큰 잘못인 것이다. 도대체 비례성의 원칙은 어디로 갔고 2∼3배의 화력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문책할 부분이 있다면 해야 한다.
정원교 편집국 부국장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