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성공자냐 승리자냐?

입력 2010-11-24 18:06


마태복음 6장 33절

성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키워드가 됐습니다. 현대인 치고 성공에 목마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계발의 대가로 알려진 어느 외국 기업의 CEO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대단한 성공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면서 “성공은 매력적이며 달콤한 꿀과 같다. 하지만 꿀맛에 너무 취해 있다보면 온몸에 꿀이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성공병’ 신드롬은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피터 드러커가 ‘21세기 리더의 선택’에서 표현한 것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레이스의 스피드에 떠밀려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숙고할 여유조차 갖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잘 믿으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는 성공증후군에 감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목회자는 환란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고 교회와 성도를 돌아보다 죽임당한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관심보다 베드로의 설교로 변화된 사람들 숫자에 더 민감합니다. 모세를 존경하는 것도 그의 온유한 인품, 겸허한 사랑, 철저한 순종, 끝없는 인내보다 200만명의 숫자를 이끌어내었으며 기적을 일으키고 홍해 바다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성공적 삶에 더 관심과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기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성공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공을 지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성공, 성경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세상적인 것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성공은 주님 앞에서의 성공입니다. 넓고 화려한 길이나 밝은 조명을 받으며 올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좁고 협착한 길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높여줄 줄 아는 것, 오리를 함께 가자 할 때 십리를 기꺼이 동행해주는 것, 다른 사람의 성공에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겸손한 성공입니다.

남을 딛고 내가 우뚝 서는 성공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공생하며 주님을 세우는 성공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가난과 질병의 짐들을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즉 ‘주님과 함께’라는 진리가 연결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깨달은 사람부터 성공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얼어붙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오직 나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인 삶은 내가 많은 것을 움켜쥐는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그 모습을 가리켜 승리자의 삶이라 하십니다. 천국의 주인공들이라 칭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성도가 지켜야 할 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하는 삶입니다. 당시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바리새인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형적 선이 아니라 내면적이며 절대적인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교회당을 크게 짓고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 백성처럼 의롭게 살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짜 승리한 그리스도인이요, 성경적인 성공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춘수 목사(평택 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