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럭비, 마침내 첫 득점… 4경기서 0대51, 0대48, 0대36, 0대52
입력 2010-11-23 18:39
0대51, 0대48, 0대36, 0대52, 그리고 5대31.
23일 오후 1시15분(이하 한국시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럭비 5∼8위전 싱가포르와의 경기가 열린 중국 광저우 유니버시티 타운 메인 스타디움. 경기장에 입장하는 문영찬(50) 감독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다. 제발 1점이라도 올려 달라는 표정이었다. 한국 여자 럭비는 21일 중국전을 시작으로 23일 오전까지 4게임을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단 1점도 올리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럭비 국가대표팀에게 차라리 1승 이전에 1점을 올리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대표팀 멤버 12명은 지난 6월 처음 선발돼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5개월 전에는 럭비의 ‘럭’자도 몰랐다. 당시 대표팀을 뽑을 때 내건 자격 요건은 그냥 ‘대한민국 여성’이었다. 직업도 제각각이다. 맏언니 민경진(26)은 라디오 PD 출신이다. 막내 채성은(17)은 고교생이다. 국제대회 성적이라곤 지난 7월 아시아선수권대회 4전 전패가 전부다.
드디어 오후 1시31분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이 몸싸움을 시작했다. 여자 럭비는 전·후반 각각 7분씩 총 14분간 경기를 치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시작됐다가 끝나는 셈이다.
시작은 좋았다. 휘슬 소리와 함께 김아가다(20)가 왼쪽 측면 돌파를 실시해 30여m를 앞질러 갔다. 하지만 이내 싱가포르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공을 뺏기고 말았다. 몸을 밀치는 것은 물론 팔로 상대의 목을 감는 등 몸싸움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곧 싱가포르에 주도권을 뺏기고 말았다. 결국 전반 종료 5분15초 만에 상대 주장 타이겍시 유니스에게 트라이(상대편 골대 밑에 라인을 넘어 공을 땅에 대는 것)를 허용한 데다 자유킥마저 내주며 0-7이 됐다.
하지만 3분 후 ‘기적’이 일어났다. 전반 종료 2분30초. 최혜영(20)이 상대 골대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뺏은 뒤 곧바로 100여m를 내달려 트라이를 성공시킨 것이다. 점수도 순식간에 5-7로 2점 차로 따라붙었다. 최혜영이 먼 거리를 달려 트라이를 성공시키자 이를 지켜보던 관중들도 큰 환호를 보냈다. 경기를 지켜보던 문 감독을 비롯한 후보 선수들도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전반은 싱가포르에 연속으로 트라이를 내주며 5-14로 마쳤다. 후반전은 한국 선수들이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단 한 번도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한국은 5대 31로 졌다.
하지만 믹스존으로 나오는 선수들과 문 감독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미소가 가득했다. 문 감독은 “오늘은 대등한 시합을 했다”면서 “첫 점수를 낸 것보다 경기를 하면 할수록 선수들의 실력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는 게 더 기쁘다”고 전했다.
한국 여자 럭비는 23일 드디어 첫 단추를 잘 끼었다. 이제 남은 것은 1승, 그리고 훗날의 우승이다.
광저우=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