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軍부대 조준포격 타격 우리軍 자주포 응사
입력 2010-11-24 03:48
23일 오후 2시34분 연례 사격훈련을 실시하던 연평도 해병 연평부대는 갑자기 뒤쪽으로 날아든 굉음에 기겁했다. 포탄이 터지면서 땅이 흔들렸고 붉은 화염이 치솟았다. 연평도에서 불과 14㎞ 떨어진 북한의 곡사포 기지인 황해도 무도와 강경반도 개머리 해안포기지에서 날아온 포였다. 20여분간 수십발이 날아들었다. 막사는 찢겨 나갔고 몇몇 병사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해안가에 배치된 해병 K-9 자주포 부대들의 막사가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첫 발은 병사들이 생활하는 내무반에 떨어졌고 해병대 연평부대 주둔지 내 사무실과 창고, 훈련장 등이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습적인 북한 포의 공격을 받은 부대는 전쟁터를 방불할 만큼 처참했다. 이번 공격은 1953년 6·25 전쟁 휴전 이후 최악의 북한 도발이었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날 80여발을 발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연평 주민들은 100발 이상의 포성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보다 더 많은 포탄이 발사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쏜 포탄 가운데 50여발은 평온한 늦가을 오후의 연평도를 강타했다. 일부는 군부대 인근 주택가도 타격했다. 건물이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고 북한 포의 사격을 받은 부대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주택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우리 해병 부대는 부상자 수습에 나서는 한편 북한의 포사격을 피해 연평도 남서쪽 해상을 향해 훈련 중이던 K-9 자주포를 분산시켰다. 4분 뒤 서해안 쪽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 2대가 굉음을 내며 발진했다. 6분 뒤 경계임무를 수행 중이던 F-15K 4대가 임무전환 명령을 받고 교전지역으로 향했고 40분에는 또 다른 기지에서 F-16 2대가 연이어 발진했다. 서해 2함대 사령부는 2시 43분 북측에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경고통신을 방송했다. K-9포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뒤 2시49분쯤 40여발을 발사했다. 군은 당시 가동 중이던 대포병레이더(AN/TPQ)에 잡힌 발사지점을 확인하고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북한이 포를 발사한 개머리기지와 무도를 향해 집중적으로 발사했다. K-9의 포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북한군의 피해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홍기 합참 작전본부장은 “원점사격을 실시했다”며 “북한도 상당한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군의 해안포는 구경 76㎜이고 우리군의 우리 K-9 자주포는 155㎜이다. K-9 자주포는 북한의 해안포와 이번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곡사포보다 화력이 좋아 비슷한 발수를 발사했다 하더라도 북한군의 피해는 우리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도발은 즉각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됐으며 합참은 곧바로 비상대기상태에 돌입했다. 한민구 합참의장은 보고를 받은 즉시 국방부 지하 1층 지휘통제실로 내려왔다. 비상조치반이 즉각 소집됐다. 한민구 의장은 시시각각 상황이 전개되는 모니터를 지켜보며 군의 대응을 지휘했다. 주한미군과도 긴밀한 연락을 했다.
2시50분 국방부는 서해5도에 국지도발 최고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으며 전군에는 ‘전투대비태세 1급’을 하달, 전군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이어 우리군은 3시1분 북측을 향해 수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1차 사격이 끝나고 불과 15분 뒤인 3시10분 다시 해안포 50여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우리 군도 15분 뒤인 3시25분 수십 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은 우리 측의 집중적인 사격에 주춤하는 듯했다. 오후 3시41분 이후 북한은 더 이상 포를 쏘지 않았다. 그러나 연평도 해병부대는 포신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다른 부대원들은 부상당한 병사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북한이 재차 해안포를 발사하자 군은 현 상황이 준(準)전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한민구 의장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화상회의를 통해 20여분간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굳은 얼굴로 대응을 논의한 두 대장은 연합위기관리 선포의 필요성을 검토키로 했다. 연합위기관리가 선포되면 한·미 연합 감시정찰장비의 대북 감시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는 등 대북감시체계가 강화되고 대북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이 현 단계보다 격상된다.
군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한 만큼 추가 사격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대북감시 태세를 강화하는 등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북한이 더 이상 포를 쏘지는 않았지만 무도와 개머리 기지에 있는 해안포 기지의 포문은 여전히 열려있는 상태였다. 합참수뇌부는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북한이 지난 1월 27일과 29일 백령도 인근에서 해안포 사격 훈련 시 밤에도 일부 사격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전담해 대응해나갈 태스크포스를 긴급 편성키로 했다.
군은 북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사격중단을 강력 촉구했다. 이날 오후 3시55분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 명의로 보낸 전통문에서 군은 “도발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으로 강력히 촉구하고 경고 후에도 계속 도발할 경우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4일 0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공동대응을 논의했다. 20분간의 통화에서 김 장관은 북한의 도발 상황을 설명했고, 게이츠 장관은 “한국이 원하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