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北, 끊임없는 무력 시위… 최근엔 서해 집중 도발
입력 2010-11-24 02:15
북한군은 1953년 6·25 휴전 이후 끊임없이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군의 도발이 불거질 때마다 전쟁 위기감에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요동쳤다.
67년 1월 19일 북한군의 공격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명태잡이 어선의 월경을 막기 위해 초계 중이던 해군 당포함이 북한 동해안 동굴포대의 해안포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이다. 승조원 79명 중 39명이 사망했고 40명이 부상했다.
이듬해 1월 21일에는 이른바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비밀 침투,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들어왔다가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한 사건이다. 공비 31명 중 28명이 사살됐고, 김신조는 생포됐다. 당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순직했으며 다수의 민간인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 30일에는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다. 1·21사태의 실패를 만회하고 남한에서 반정부 민중 봉기를 일으킬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울진·삼척 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침투시킨 사건으로 이승복 어린이와 군경 등 총 18명이 사망했다.
70년대 초반 남북 화해 무드로 주춤했던 북한의 무력 도발은 70년대 중반 들어 재개됐다. 75년 9월 11일 전북 고창의 전경대 해안초소에서 경계병이 해안 순찰 중 북한 공작원 두 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경계병 3명이 전사했다. 또 76년 8월 18일에는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를 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한·미군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지만 8월 21일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엔 사령관에게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후 96년 9월 18일 속초 해역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정에 타고 있던 승조원들이 강원도 일대에 상륙했다. 강원도 일대에서 이들과 교전을 벌인 국군 11명과 경찰·예비군 2명,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99년과 2002년 연평해전과 2009년 대청해전 등 최근 들어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서해에 집중됐다. 특히 북한 경비정 두 척이 남한 측 북방한계선을 침범, 기습 포격을 가해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피격된 2차 연평해전(2002년)에서는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했다. 급기야 올해 3월 천안함이 북한이 쏜 어뢰에 의해 침몰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