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유로존, 원인은 유로화?… ‘강한 유로’ 여파 주변국들 재정적자 줄이기 어려워
입력 2010-11-24 02:35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까지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유로화 체제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국가에 부담이 되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23일 의회에서 “우리의 단일 통화 체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추락하는 주변부=유로존 위기를 전하는 외신에선 최근 ‘주변부 경제(peripheral economies)’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 아일랜드를 포함해 구제금융 위기에 처한 유로존 국가를 독일 프랑스 같은 중심 국가와 구분하는 말이다.
주변부의 대표 사례가 아일랜드와 그리스다. 두 나라는 구제금융을 받기 전부터 재정적자 축소 등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가 장애물이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9만 달러를 넘는 룩셈부르크부터 1만6000달러의 슬로바키아까지, 지난해까지 세계 최대 수출국이었던 독일부터 무역적자가 GDP의 10%를 넘는 그리스까지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한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쓰는 모순 때문이다.
호황일 때는 모두가 좋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로화 환율은 유로당 1.2달러에서 1.6달러까지 치솟았다. 투자자들은 주변부의 국채를 마구 사들였다. 그리스 아일랜드 같은 나라로선 낮은 금리에도 돈이 쏟아져 들어와 뜻밖의 호황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도 은행 대출은 줄지 않았다.
독자 화폐를 가진 국가였으면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고 통화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거품이 줄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공식이 유로화 체제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주변국과 중심국의 차이가 너무 컸다. 유로화 가치는 독일 경제 수준에 맞춰 강세를 유지했다. 주변국은 거품을 조절할 기회를 잃었다. 유로화 강세는 오히려 주변국이 수출을 늘려 성장을 꾀할 기회까지 빼앗았다. 결국 빚을 감당하지 못한 그리스와 아일랜드가 차례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분열하는 유로존=유로존 위기를 보는 시각도 중심부와 주변부가 다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1일 “그리스식 구제금융은 더 이상 안 된다”며 “다른 국가의 구제금융 비용을 왜 독일 국민이 부담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구제금융을 위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독일이 3분의 1을 부담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발언은 주변부 국가에 폭탄이었다. 채권 투자가들이 위축되면서 아일랜드 국채금리는 유로화 출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치솟았고 결국 EFSF에 손을 내밀었다.
독일은 여전히 주변부 국가에 투자한 채권자들도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공동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더 나아가 “구제금융보다 차라리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채권단과 협상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장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주변부 국가로선 당장 충격이 큰 채무불이행보다는 구제금융을 선호한다. 공동책임론에도 부정적이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로 위기가 확산될수록 주변국과 중심국의 입장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은 22일 “유로화 사용을 서두를 뜻이 없다”고 밝혔다. 체코는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도 유로존 가입은 미뤄 왔다. 유로화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체코의 유로존 가입은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