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독일의 수출기반 성장모델

입력 2010-11-23 17:52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세력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 금융위기는 주로 신흥국에서 발생하였다. 그런데 리먼브러더스 은행의 파산으로 시작된 최근의 위기는 세계경제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국가부채에 시달리고, 신흥국은 위기에서 빨리 회복되고 있다. 중국은 경제위기의 후폭풍을 맞고 있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독일은 아직 본격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을 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미국은 지난 6월 토론토 G20회의에서 3년 내로 재정적자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출구전략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경기활성화를 위해 6000억 달러를 찍어내는 금융 주사를 처방하였다. 환자에게 계속 주사를 놓는다는 것은 병세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서울회의에서 드러난 갈등

미국 중심의 세계통화질서가 흔들리면서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다극적 국제 통화체제를 건설하려는 야심이 있다. 드골은 외환보유와 국제결제 등에서 누리는 달러의 지위를 무소불위의 특권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전후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하였고 경제적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G20 서울회의는 자유경제 이념의 주도권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회의에서 미국은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경상수지를 4%로 제한할 것을 요구하였고, 독일은 자유교역의 수호를 위해 항변하였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경상수지는 수출경쟁력의 성적표”라고 말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얻은 좋은 성적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하였다. 독일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4% 제한폭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기계적 수치이며, 독일의 주요 수출품은 기계설비와 같은 자본재로서 다른 나라의 제조업 발전에 기여하고, 타국의 소비재 시장을 크게 잠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상수지는 국가 간의 비교가 아니라 통화권 간 비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독일은 유로존의 일부분이며, 유로존 국가와 미국을 비교하면 무역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수출기반 경제모델 국가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의 비중이 25%에서 40%로 증가했다. 10개를 생산하면 4개를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셈이다. 이러한 독일의 수출확대에는 세계화가 크게 기여하였다. 세계경제의 통합성이 증대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이다. 정부는 수출기업에 대한 보증과 대출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갖추고 있으며, 최근에는 노동시장을 개혁해 수출가격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기업은 인구가 노령화되면서 구매력이 둔화되자 해외시장에서 성장의 활력을 찾았다.

제조업이 강한 독일은 세계경기 회복의 이득을 가장 먼저 점유하였고, 수출의 선도적 호조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통일 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리는 독일은 금년에 최소한 3.5%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국가운명 갈려

오랫동안 개방경제 정책을 취해온 미국인은 수입에 대하여 관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외국상품이 들어오는 것이 미국 기업에게 경쟁력을 자극하고, 소비자에게 물가인하의 이득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독일과의 무역불균형 논쟁에서 앞으로 세계 각국은 미국시장에 상품을 수출하여 성장을 꾀하기보다 자국의 국내시장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미국이 외국상품의 무한시장이 될 수 없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백에 유의하고 대비를 하여야 한다.

G20 서울회의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세계경제지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위기는 전쟁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전쟁이 국가의 운명을 전승국과 패전국로 나누는 것처럼 경제위기 이후 국가의 운명은 크게 갈라진다. 한국은 경제위기로부터 교훈을 얻어, 부상하는 국가의 대열에 서야 한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 유럽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