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디로 가고 있나] 총리들 잇따라 ‘조기 하차’… 정치 리더십 사라진 列島
입력 2010-11-23 17:34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선 각국 정상들 간 회담이 줄을 이었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환율 등 현안을 중재한 반면 일본은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했다. G20 정상회의에 이어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일본은 의장국 역할이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퇴진 이후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현주소는 정치리더십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명(短命) 총리들로 국력 약화=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중의원(하원)의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당 대표가 바뀌면 총리도 교체된다. 역대 3번째 장수총리로 기록된 고이즈미(2001. 4. 26∼2006. 9. 26) 이후 연례행사처럼 총리가 바뀌고 있다.
지난 4년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다로(麻生太郞),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그리고 간 나오토(菅直人)까지 모두 5명의 총리가 부침하고 있다. 1년도 안 돼 총리들이 사퇴하는 건 일본 정치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간 총리 역시 취임 5개월여 만에 중의원 해산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중의원 해산은 총선을 실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에 따라 총리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단명 총리’ 현상은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와 지지율에 민감한 일본 정치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근본은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 부재이다.
최근 총리들은 대부분 전직 총리의 사임 발표 뒤 며칠 만에 뽑힌 경우가 많아 사전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세습의원 출신인 이들은 근성이 부족해 조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경우 총리직을 내팽개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잦은 총리 교체로 상징되는 일본의 정치 불안은 정책 일관성을 해쳐 국가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국민도 외면하는 후진 정치=단명 총리 시발점은 바로 파벌로 대표되는 후진적인 정치 시스템이다. 일본은 1955년 자민당 체제가 들어선 이후 반세기 이상 정당보다 파벌이 주요 정치적 역할을 해왔다. 파벌 수장은 계파 관리를 위해 업계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구도에 염증을 느낀 일본 유권자들의 대반란이 바로 지난해 8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다. 이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자민당을 물리치고 여당이 되는 정권 교체를 이뤘다. 하지만 민주당도 파벌이나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나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정치자금 스캔들은 국민들을 다시 실망시켰다.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민주당의 아마추어적 국정운영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간 총리는 첫 비세습 의원 출신이긴 하지만 그 역시 반(反) 오자와를 외치는 파벌의 논리로 선출돼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11월 현재 간 총리 내각 지지율은 27%로 위험수위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