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11-23 17:40
(20)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십자가가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체험되어야 한다. 신앙고백을 위하여 우리에게 십자가의 믿음이 필요하듯이 영적인 삶을 위해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체험이 필요하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이를 위한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은 십자가의 믿음이 나와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체험된다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나’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나 나온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나 단순히 못 박힌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못 박혔다.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 그러나 살아서 세상 아무데나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계신다. 영적 세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육체 안에도 거하신다. 그의 사랑은 막연히 세상을 사랑한 사랑이 아니라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한 사랑이다. 그나마도 추상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버리면서 사랑했다. 따라서 나도 이제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지 않는 나는 없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나와 관계를 맺고 나는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다.
‘예루살렘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매력적인 각주를 붙였다. “나의 모든 행위는 십자가 안에서 신비롭게도 그리스도의 행위가 된다.” 내가 그리스도가 짊어진 실제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이에 나의 죽음, 나의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혼자 죽은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고 산 장소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 나를 떠나 그리스도가 죽지 않았고 나를 떠나 그가 살지 않았다. 나에게 그리스도가 소중하듯이 그리스도에게 나도 소중한 존재다. 내가 그리스도를 떠나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도 나를 떠나 살 수 없다.
나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사랑은 누구도 끊을 수 없다(롬 8:35).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듯이 그리스도도 내 안에 있다(요15:4). 영적 생활의 성패는 그리스도와 나의 체험적 관계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 6:8) 이 말씀은 신학이나 교리를 위한 말씀이 아니라 바울의 체험적 고백이다. 물론 그 체험은 인간의 감정적 체험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고 성령님이 허락하신 영적 체험이다. 그 체험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반드시 존재한다. 그가 십자가에 죽을 때 나도 죽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영적 삶의 성패는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약한 이유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와 죽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았다면 무엇을 무서워하겠는가? 우리가 믿고 선포하는 최고의 고백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고 다시 살았다는 것이다.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