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심분리기 공개] 고난도 농축기술 과연 있나…‘北 수준’ 어느 정도일까

입력 2010-11-23 00:11


북한이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을 놓고 여러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은밀하게 우라늄 고농축작업을 하지 않고 굳이 국제사회에 공개한 이유, 이미 다른 곳에서 우라늄 농축 작업을 벌였을 가능성 등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굳이 공개한 것은 기술수준을 과시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시설이 파키스탄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알메로나 일본의 로카쇼무라의 원심분리기를 모델로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게 헤커 소장의 전언이다. 그러나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

북한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을 통해 원심분리기에 쓰이는 알루미늄관 등 우라늄 농축시설과 20여종의 설계기술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알메로나 로카쇼무라의 원심분리기는 파키스탄이 개발한 P-1, P-2형보다 길이는 짧지만 농축우라늄 제조 속도는 훨씬 빠르고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은 구체적인 기술력은 노출시키지 않는 ‘전략성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이 파키스탄의 수준은 넘어서는 것이라고 과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김종선 남북협력팀장은 “이란의 경우에서 보듯 우라늄 농축시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북한이 아직까지 고난도 기술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 국책연구소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한은 ‘기술주체’ 사상에 따라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자체 기술개발에 힘을 쏟아왔다”며 “상당 수준의 기술을 갖췄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했던 고위 탈북자들은 한국이 북한의 기술수준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우려하고 있다”며 “헤커 박사의 발언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핵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시설 외에 다른 곳에도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이 있을 가능성을 놓고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은 헤커 소장에게 2000개 규모의 원심분리기를 보여주며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은 90년대 중반부터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다른 곳에 농축시설을 만들어 놓고 가동했을 개연성이 높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에 2000∼4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어 있는 농축시설이 존재할 경우 북한은 이미 상당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이미 확보했거나 폭탄 제조 단계까지 기술이 진전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